간신히 붙잡은 방어권의 결과, 묵묵히 지켜낸 내 삶의 온전한 봄날

지난 2025년 12월, 제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던 억울한 화재 사고가 있었습니다. 불이 나 모든 걸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저를, 도리어 원인 제공자 취급하며 사정없이 몰아세우던 관계 기관의 그 기막힌 유도 신문 과정은 지금도 자꾸만 뇌리를 스쳐 가며 숨을 턱 가로막게 만듭니다.

그날은 어머니께서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셔서 오후 2시쯤 옆 동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건너갔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4시가 지날 무렵, 갑자기 밖에서 불이 났다는 옆집 아저씨의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놀라서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는데, 복도는 이미 시꺼먼 연기로 완전히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운 연기를 뚫고 안쪽을 보니 붉은 불길이 무섭게 번져가는 게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진짜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소화기부터 움켜쥐고 불길 속으로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안전핀을 뽑아 불길을 향해 마구 뿜어댔습니다. 온몸으로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소화기 한 통을 전부 다 쏟아붓고 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불을 끄고 매캐한 연기 속에서 콜록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으니, 그제야 이웃의 신고를 받은 소방차와 현장 조사팀이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현장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불을 끄고 난 뒤에는 진짜 기가 막힌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더 참담하게 만든 건 이웃들의 가식적인 시선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집 주변에는 동네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것마냥 우글거리며 몰려들어 수군거렸고, 심지어 한 이웃 아주머니는 조사관을 붙잡고 "저 사람 벌금 나오느냐"는 상식 밖의 질문을 태연하게 던지기도 했습니다. 담당자들은 행정적 수순에 따라 처참한 현장에서 일부 흔적만을 대충 검출해 가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현장 조사가 끝나고 다들 해산한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재를 뒤집어쓴 채 앙상한 뼈대만 남은 집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을 때 밀려온 막막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지독한 탄 냄새 속에서 복구 비용을 알아보니, 화재 전문 청소업체는 황당한 금액을 폭리로 요구했습니다. 결국 거액을 들여 청소를 마친 후에도 검은 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어, 그야말로 자금만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화재 현장을 직접 샅샅이 뒤지던 저는, 세탁기 밑에서 기름이 검게 탄 자국과 의심스러운 발화 흔적을 명확하게 찾아냈습니다. 명백한 인위적 자국을 발견하고 가슴을 졸이던 중, 사고 일주일 뒤 관계 기관 담당자에게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는 정확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현장 증거 사진과 구조 도면까지 직접 꼼꼼하게 그려서, 퇴근 후 야간 시간에 약속을 잡고 조사관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사유로 면담을 받는 건가요라는 제 질문에, 담당자는 분명 피해자 겸 참고인 조사일 뿐이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처음에는 휴대폰 녹취를 해도 좋다고 하더니, 내부에 보안 장치가 있으니 나중에 절차를 밟을 때나 하라며 은근슬쩍 말을 바꾸더군요. 하지만 이미 험한 세상사에 단련될 대로 단련된 저는 직감적으로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단호하게 녹음기를 켠 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 상대방은 피해자인 저를 어떻게든 책임을 지는 쪽으로 엮어보려는 일방적인 유도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밤새 준비해 간 증거 사진과 도면을 테이블에 내밀며 현장을 다시 깐깐하게 조사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지만,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그게 뭔데요'라며 제 증거들을 묵살하고 재조사는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당시 제가 당당하게 녹음기를 켜고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21조에 따른 참고인 조사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협조를 전제로 하기에 진술을 강요할 수 없으며, 언제든지 조사를 중단하고 퇴거할 권리가 있습니다.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위한 기록과 동법 제244조의4 등 본인 권리 행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법 절차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특히 조서 작성 후 본인의 진술과 다르게 기재된 부분이 없는지 대조하고 수정이나 이의제기를 명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방어권 행사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도신문이나 압박 수사로 인해 피해자가 부당하게 피의자로 전환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저는 제 권리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습니다.


불을 끄느라 애쓴 피해자를 도리어 책임자로 몰아가려는 기막힌 행태에 치밀어 오르는 분통을 간신히 억누르며, 저는 마지막 조서 기록란에 "현장조사가 명확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적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쐐기를 박아두었습니다. 만약 저를 대상으로 더 확인할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해 해가 가기 전에 다 끝내라고 말입니다. 음력 정초부터 온갖 지독한 일들에 시달리다 12월에는 불까지 났는데,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 지긋지긋한 악재의 찌꺼기를 단 1초도 품고 살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못을 박았습니다.

당황해하는 담당자를 뒤로하고 나서는 길, 머릿속에는 여전히 치우기 막막한 탄내 가득한 집구석만 맴돌아 발걸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시꺼먼 잿더미 속에서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릿합니다. 법을 다룬다는 사람들이 정작 해야 할 일은 건수 하나 올려 실적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벼랑 끝에 선 평범한 피해자의 억울한 목소리부터 제대로 들어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담당 사법기관으로부터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사건이 윗선으로 넘어가지 않고 경위 선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되었다는 통지서였습니다. 비로소 억울한 누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 날까지 저를 괴롭혔던 악재 속에서도, 저는 제 손으로 직접 현장 도면을 그리고 녹취를 켜며 비겁한 세상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그 매운 연기 속에서 소화기를 움켜쥐었던 그날의 용기처럼,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그 어떤 액운도 내 삶을 흔들지 못하도록 제 소중한 일상을 더 단단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