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보다 더 괴물 같았던 인간의 이기심, 영화 '프랑켄슈타인' 빅터와 피조물의 비극이 주는 묵직한 질문
오랜 꿈으로 완성한 고전의 재해석
2025년에 공개된 프랑켄슈타인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메리 셸리의 고전 소설을 새롭게 해석한 드라마 영화입니다. 오스카 아이작이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제이컵 엘로디가 그가 만들어 낸 피조물을 연기합니다. 미아 고스와 크리스토프 발츠, 찰스 댄스가 주요 인물로 참여해 창조와 가족, 욕망과 책임이 얽힌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오랫동안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그는 익숙한 괴물 이야기의 공포를 반복하기보다 생명을 창조한 사람과 세상에 버려진 존재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영화는 빅터의 실험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피조물이 처음 마주한 세상을 그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원작의 핵심 질문을 유지하면서 인물의 감정과 가족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 특징입니다.
생명을 만들고 책임을 외면한 빅터
빅터는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에 사로잡힌 과학자입니다. 뛰어난 지식과 강한 추진력을 지녔지만 자신의 연구가 불러올 결과와 새로 태어날 존재의 삶은 충분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험에 성공한 직후 피조물이 살아난 사실에 기뻐하지만, 피조물이 자신의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자 점차 실망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자신이 만든 존재를 이해하고 보살피기보다 결함이 있는 결과물로 여기면서 두 사람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빅터를 위대한 발견을 이룬 영웅이나 단순한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 죽음을 통제하려는 집착이 서로 맞물리며 그의 선택을 만듭니다. 오스카 아이작은 확신에 찬 과학자의 태도와 계획이 무너진 뒤의 불안한 모습을 함께 표현합니다. 빅터의 실패는 생명을 만드는 기술보다 창조한 존재를 끝까지 책임질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 생명을 만든 과학자와 세상에 홀로 남겨진 피조물의 시선으로 창조와 책임, 용서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
괴물이 아닌 존재로 바라본 피조물
피조물은 세상에 태어난 직후 자신을 만든 빅터에게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는 주변을 관찰하며 감각을 깨우고, 이후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과 교류하면서 언어와 인간의 감정을 배웁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해치려는 존재가 아니라 호기심과 외로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지닌 생명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의 낯선 외형을 본 사람들은 먼저 두려움을 드러내고, 반복되는 배척과 상실은 피조물의 분노와 절망을 키웁니다.
제이컵 엘로디는 큰 체격을 활용하면서도 느린 움직임과 흔들리는 눈빛으로 피조물의 순수함을 보여줍니다. 말을 배우고 감정을 깨닫는 과정에 따라 목소리와 자세도 달라집니다. 미아 고스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외형만으로 피조물을 판단하지 않고 그의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교감은 누가 진정 인간다운 태도를 지녔는지 생각하게 하며, 피조물을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세웁니다.
색채와 공간으로 완성한 고딕 세계
프랑켄슈타인의 개성은 정교한 미술과 의상에서도 드러납니다. 빅터의 실험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공간인 동시에 그의 집착이 응축된 장소로 표현됩니다. 거대한 장치와 차가운 금속, 어두운 통로가 과학적 야망의 위압감을 만들고, 눈 덮인 자연과 폐허는 피조물의 고독을 강조합니다. 붉은색과 푸른색, 금빛을 대비한 화면은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의상은 인물의 성격과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빅터의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옷차림은 자신감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피조물의 몸과 옷에는 탄생의 흔적과 긴 여정이 쌓여 갑니다. 현실적인 질감을 지닌 촬영 공간과 회화적인 색채가 결합하면서 고전 문학의 분위기와 감독 특유의 환상성이 조화를 이룹니다.
창조보다 중요한 책임을 묻다
이 작품은 인간이 생명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들어진 존재를 가족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창조자는 자신의 선택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빅터와 피조물의 대립을 통해 살펴봅니다. 피조물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몸이나 특별한 힘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줄 관계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화려한 실험과 추격을 보여주면서도 버림받은 존재의 슬픔과 용서의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둡니다. 빅터와 피조물은 원망과 적대 속에서 대립하지만, 창조자와 피조물이라는 관계로 누구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들의 비극을 통해 외형이 인간성을 결정하지 않으며, 사랑과 책임을 외면한 사람이 오히려 괴물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전합니다. 고전의 익숙한 이야기를 창조자와 피조물의 감정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