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앞 팽팽한 적막을 깨트리던 스크럽 간호사와 초짜 의사의 톱니바퀴 연대
당시에 스크럽 간호사였던 제게 환자의 안위가 실시간으로 오가는 수술실 안은 늘 숨이 막힐 듯한 팽팽한 적막이 흐르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독 성격이 엄하고 난폭한 교수들은,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이 보조를 조금만 버벅거려도 수술 기구를 바닥 사방에 던져버리거나 거친 언사를 내뱉으며 고래고래 다그치기 일쑤였습니다. 말 그대로 피가 마르는 긴박한 최전선이 따로 없었지요.
그런 수술대 앞에서 얼어붙어 버린 초짜 레지던트들과 한 조가 되어 그 무서운 수술방을 어떻게든 사수해야 했습니다. 당장 마취된 환자가 누워있는 수술실 안에서는, 오직 현장을 지키는 우리들의 끈끈한 호흡만이 위급한 생명을 붙잡아줄 유일한 보루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긴장해서 이마에 땀이 흥건해진 초보 의사의 흔들리는 눈빛만 보고도, 그가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놓치고 얼어있는지 귀신같이 알아챘습니다. 수술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다음에 필요한 수술 기구들을 그의 손바닥에 타이밍 맞춰 탁탁 때려 박듯 쥐여주었습니다. 드라마 속 전문의 영혼이 초짜의 몸을 빌려 수술을 해내던 것처럼, 제 숙련된 손끝으로 서툰 전공의의 손을 이끌어 함께 환자를 보살폈던 그 순간의 짜릿한 성취감과 보람은 지금 돌이켜봐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벅차오릅니다.
다만 드라마 속 판타지와 달리 현실의 병원 조직에서는 레지던트 1년 차가 교수님이나 윗 연차에게 감히 반문하거나 따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상명하복의 규율이 엄격했습니다. 문득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진짜 의사로 성장해 나가던 드라마 속 설정이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 기저에 깔린 인간적인 성장의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오만했던 전문의는 영혼이 되고 나서야 환자들의 두려움과 간절함을 비로소 눈에 담게 되고, 어수룩한 레지던트는 제 손으로 환자를 살려낼 용기를 배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진짜 동료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덮어두었던 병원 근무 시절의 씁쓸하고도 웃픈 풍경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어느 과를 가든 레지던트 1년 차 때까지만 해도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책을 떼고 참 살갑게 지내다가도, 꼭 2년 차, 3년 차가 되면 다들 목에 힘부터 빡 주고 거드름을 피우며 다니기 일쑤였거든요. 게다가 4년 차들은 전공의 시험공부를 한다며 방구석에 들어가 버려서 얼굴 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 1년 차 선생님들과 땀 흘려 고생하면서 서로 끈끈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현장을 지켜냈던 시간이야말로 위급한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던 진짜 살아있는 호흡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의료법 제27조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모든 의료인은 면허된 범위 내에서만 행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술실이라는 긴박한 현장에서 전문의의 명확한 지도와 감독 하에 숙련된 스크럽 간호사가 정당한 진료 보조의 틀 안에서 수술 기구를 정확히 전달하고 보조하는 행위는 환자의 안전과 유기적인 수술 흐름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수술실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이 같은 직역 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철저한 법적 테두리 준수야말로, 의료 사고를 방지하고 환자의 안전권을 확보하기 위한 보건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기둥입니다.
제 옛날 수술실 시절의 공기가 온몸으로 되살아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화려한 직함이나 포장지보다 진짜 중요한 건,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책임을 나눌 줄 아는 진심 어린 연대와 책임감입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매서운 임상 현장의 공기를 버텨내며, 진짜 의사로 자라나던 전공의들과 함께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냈던 자부심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눈앞의 얄팍한 요령이나 편법에 흔들리지 않고, 제 손끝으로 정직하게 이 블로그 공간의 가치를 책임져 나가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냉혹한 시선 앞에 부딪혀 홀로 고단한 싸움을 벌이고 계실 선량한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위태로운 수술대 앞을 끝끝내 사수해 냈던 그 시절 톱니바퀴 같던 연대처럼, 당장 눈앞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조급해하거나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정성을 쏟아부어 생명의 숨결을 이어낸 진짜 마음은, 결국 장벽을 허물고 온전하게 통하는 법이니까요. 지금까지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