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와 호구조사로 얼룩진 옛 교실의 기억, 그리고 흔들리는 오늘날의 교단
요즘 뉴스에서 학교 현장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을 지켜보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참 씁쓸해집니다. 화면 속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제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교단 앞에서의 가혹했던 훈육과 은밀하게 오가던 촌지, 그리고 부모님의 직업과 재산으로 아이들을 대놓고 차별하던 가식적인 환경 조사가 당연하게 통하던 그 시절 교실의 풍경이 생각났습니다.
제 중고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강압적인 분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국어 시간에 시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선생님의 두꺼운 교과서가 가차 없이 머리 위로 날아들었고, 수학 선생님은 날짜가 28일이면 대뜸 28번 학생을 불러내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칠판 앞에서 쩔쩔매다 문제를 못 풀기라도 하면, 가혹한 처벌이 당연하다는 듯 내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반에 무려 60명씩 10개 반이 넘던 과밀 학급에서, 앞 번호가 틀리면 38번, 48번으로 연달아 불려 나가 엄한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시절 교단 앞에서의 시간은 생각만 해도 온몸이 뻣뻣하게 굳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포의 기억이었습니다.
그런 살벌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오신 새내기 국어 담임 선생님은 항상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띠고 계셨습니다. 엄하기만 한 선생님들 틈에서 그분을 보니, 제 눈에는 세상에 저런 천사 같은 분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참 귀하고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그 선생님을 다시 담임으로 만났을 때, 제가 알던 천사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게는 커다란 충격과 실망이었습니다.
어느 시험 날, 교실 뒤편에서 몇몇 아이들이 쪽지를 돌리며 부정행위를 하다가 딱 걸리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몇 명을 지목하며 엄하게 매를 들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장 뒤에 가서 손을 들고 서 있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시험 시간이 끝난 뒤에도 교무실로 따라오라며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가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모질게 다그치셨는지, 어느 학생은 손가락 부위를 심하게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요즘 시대 같으면 당장 교단 문책은 물론이고 관계 기관에 엄중한 조사가 들어갈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그 시절에는, 다친 학생의 어머니가 도리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습니다. 무조건 학생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던 그 무서운 교단 앞에서, 그렇게 좋았던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매섭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서글프고 아찔했습니다.
교실 밖 복도를 걸어가다 우연히 목격했던 풍경도 어린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한 학부모님이 담임 선생님의 손에 슬그머니 건네던 두툼한 흰 봉투,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촌지 봉투'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집으로 찾아오던 가정방문 역시, 귀한 저녁상을 대접받고도 엉덩이를 떼지 않으며 은근히 무언가를 요구하던 얄궂은 속셈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그 시절에는 이러한 부조리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참아야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히고 서글플 뿐입니다.
특히 제가 학창 시절 내내 가장 싫어하고 상처받았던 순간은, 교단 위에서 대놓고 몰아세우던 그 무자비한 호구조사 시간이었습니다.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 손 들어라, 전화기 있는 사람 손 들어봐라, 심지어 아버지가 대졸인지 고졸인지 부모님의 학력까지 손을 들게 하며 학생들을 대놓고 줄 세우던 잔인한 짓을 일삼았지요.
그저 순수하게 공부를 배우러 학교에 간 것뿐인데, 집이 얼마나 잘살고 부모가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왜 반 친구들 앞에서 수치스럽게 증명해야 했는지 모릅니다. 넉넉하지 못하고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수많은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기가 죽어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그 차가운 시선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서러움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에 씻기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날의 교육 현장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촌지가 사라졌고, 교육기본법 제4조에 의거해 어떠한 이유로도 학생을 차별하지 않는 환경을 구축하며 과거의 부조리들을 많이 극복해 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학교는 또 다른 갈등에 직면해 있습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제10조에 따른 무분별한 의심 신고 조항이 교사들의 정당한 생활지도권까지 위축시키는 맹점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오직 사법 기관의 잣대로만 판단되면서 교육의 자정 능력이 흔들리자, 최근에서야 '교원의 정당한 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교권 보호 4법이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강압적이고 무자비했던 방식도 분명 끔찍한 부조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정당한 가르침과 소신조차 무분별한 고발의 대상으로 몰아세우며 서로 날을 세우는 요즘 학교를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옛 상처들이 자꾸만 겹쳐 보여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진짜 올바른 교육이라면 어느 한쪽의 권리만 무섭게 앞세울 게 아니라, 무너진 교단 위에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따뜻한 울타리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돈과 촌지 봉투, 거친 훈육이 오가던 얄궂은 교실 안에서도, 기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제 어린 날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불신과 갈등으로 시끄러운 요즘 교단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록 나중에는 무섭게 변해버리셨지만 한때 우리를 보며 조건 없이 환하게 웃어주던 그 선생님의 진짜 미소가 참 그리워집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 학교 현장에 그 따뜻했던 웃음이 다시 가득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