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피어나지 못한 건반, 내 방구석에 멈춰 선 중고 피아노의 선율

문득 살아가다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질 때면, 과거 제 사춘기 시절 꿈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끝내 시기를 놓쳐 아쉬워했던 옛 기억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어린 시절, 저는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하던 소녀였습니다.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빈집이 되면 거울 앞에 서서 가수가 된 듯 목청껏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어느 날 제 노랫소리를 우연히 들으신 기분 좋은 아버지께서 "우리 딸, 노래 정말 잘하네"라며 건네신 다정한 칭찬 한마디는 제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꿈의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피아노가 너무나도 치고 싶었던 어느 날은 진짜 피아노가 없어 집안 장식장의 튀어나온 선반을 피아노 건반 삼아, 그 위에 종이 악보를 올려두고 혼자 열심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상상 속의 연주를 펼치기도 했었습니다. 진짜 소리가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어 어머니께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지만 거절당했을 때의 서운함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고스란히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자며 제 손을 잡고 이집 저집 문을 두드렸을 때, 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쁜 마음으로 엄마의 뒤를 졸졸 따랐습니다. 하지만 학원 문을 나설 때마다 수강료가 너무 비싸다며 한숨을 쉬시던 엄마는 결국 제 손을 이끌고 엉뚱한 주산학원의 수강증을 끊어주셨습니다. 속상한 마음은 뒤로한 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주산에 매진했고, 감사하게도 전국 주산 경기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 피아노 선율을 향한 갈증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입사할 때까지도 끈질기게 맴돌며 쉽게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간호사로서 생애 첫 월급을 받던 날, 저는 그 시절의 한을 풀기 위해 직접 중고 피아노 한 대를 구입해 제 방 한구석에 들여놓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생각지도 못한 아쉬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꿈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숨 가쁘게 몰아치는 병원의 3교대 신입 간호사 스케줄 속에서 제 마음대로 시간을 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밤샘 나이트 근무와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다 보니,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 두고도 한 달에 간신히 보름밖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지요. 결국 제 방 한구석을 채우고 있던 피아노는 제대로 된 연주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그저 먼지만 쌓여가는 처지가 되었고 제때 피어나지 못한 꿈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빛을 잃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 학교 문제로 이사를 하던 날에는 정말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도 있었습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피아노의 진짜 주인인 제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중고 상점에 피아노를 홀라당 넘겨버린 것입니다.

현행 대한민국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또한 소유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물건을 이동시키거나 처분하여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는 형법 제366조(재물손괴죄)의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계약에 따라 이삿짐을 안전하게 운송하고 보관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채, 주인 허락도 없이 소중한 물건을 처분해 버린 행위는 사법적인 관점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위법 행위입니다.


당시의 저는 너무나 화가 치밀고 당장이라도 관계 기관에 고발하고 싶었지만, 3교대 업무에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어 그 사람들과 소리 높여 시비를 가릴 최소한의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글픈 눈물을 삼키며 제 오랜 꿈의 조각을 그대로 포기하는 길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진짜 소중했던 꿈의 시기를 서글프게 놓쳐버려야 했던 기억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듭니다.

비록 현실의 고단함 속에 피아노 소리는 멈춰 섰을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하고 따뜻하게 소통하려 애썼던 옛 시절의 순수한 자부심만큼은 제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앞으로도 눈앞의 요령이나 편법에 흔들리지 않고, 제 진심을 담아 정직하게 이 블로그 공간의 가치를 책임져 나가겠습니다.


세상의 냉혹한 시선과 시련 앞에 부딪혀 홀로 고단한 싸움을 벌이고 계실 선량한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당장 눈앞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조급해하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방구석의 멈춰 선 피아노 건반 위에서도 정성을 다해 나만의 멜로디를 가만히 복원해 가던 진짜 마음은, 결국 차가운 장벽을 허물고 온전하게 통하는 법이니까요.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