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병실을 덮친 차가운 시선, 피해자의 권리와 인간 존엄의 방어선

화면 속 인물들의 다정한 얼굴 뒤에 감춰진 철저한 두 얼굴을 지켜보노라면, 가만히 덮어두었던 병원 응급실 시절의 잔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합니다. 제가 밤샘 근무를 서며 치열하게 현장을 지키던 깊은 밤, 인근 공원에서 뜻하지 않은 커다란 가해를 입고 심각한 상태로 실려 왔던 어느 여성 환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자정이 훌쩍 넘은 깊은 새벽, 119 구급차에 실려 들어온 환자의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안타까웠습니다. 이동식 침대에 실려 들어온 그녀는 의식마저 희미한 일촉즉발의 상태였습니다. 함께 따라온 동행인은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했습니다. 늦은 시간 인근 공원에 간 지인이 한참 동안 오지 않길래 찾으러 갔다가, 바닥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해 신고했다고 정신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급하게 당직 의사를 호출했고 바로 응급 처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 과정에서 흘러나온 의료진의 발언은 제 귀가 다 부끄러워질 만큼 기가 막혔습니다. 담당자는 환자의 처참한 고통 앞에서도 오직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을 지키던 간호사였던 저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품지 못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내뱉던 그 몰상식한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슴속에서 격렬한 분노가 들끓어 올라 주먹이 부르르 떨리던 순간이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의 현실은 화면 속 풍경처럼 마냥 따뜻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환자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주위의 비뚤어진 시선이 쏟아졌고, 상처받은 환자의 마음은 보호받아야 할 공간에서조차 또 한 번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처치가 간신히 끝나고 환자가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관계 기관의 조사관들이 병실 문을 거칠게 열고 밀고 들어왔습니다. 환자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병실에서조차 가혹한 현실의 벽을 마주해야 했던 기막힌 순간이었습니다. 힘없이 겨우 눈을 뜬 여성에게 조사관들은 당시 상황이 어땠냐며 다짜고짜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공적인 장소를 나오는데 어떤 낯선 이가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환자의 가냘픈 목소리는, 곁에서 듣는 제 마음을 서늘하게 얼려버릴 만큼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목소리가 너무 작아 기록 작성이 안 된다며, 차후에 기운을 차리면 서면 조사를 위해 직접 출석하라는 냉정한 요구만을 남긴 채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피해를 입은 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그렇게 힘든 걸음을 해야 하는지, 야속하고 답답한 현실 앞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고작 10분 거리였던 그 공원은 평소 가로등도 어둡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없는 취약지역이라 안 그래도 자잘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왜 주변 사람들은 그 무섭고 늦은 시간에 혼자 외딴곳을 가게 그냥 내버려 뒀는지, 지켜보는 내내 원망스럽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통쾌한 결말도 없이, 결국 명확한 전말을 밝해내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번 방송을 보면서 겉으로만 선량한 척 행세하던 인물의 추악한 이면을 마주했을 때 새삼 깊은 자괴감이 들었던 것도, 당시 응급실에서 마주했던 그 냉정한 시선들의 민낯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초지종도 알지 못하면서 피해를 입은 이의 행실을 먼저 도마 위에 올리며 잔인한 시선을 던지곤 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이토록 맥없이 짓밟히는 현실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서글프고 먹먹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제3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사회적 신분이나 범죄 피해 여부와 관계없이 의학적 기준에 따른 정당한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따라서 의료진이 환자의 배경에 대한 편견으로 진료를 소홀히 하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것은 법적·윤리적으로 분명한 문책 대상입니다. 또한, 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24조' 및 관련 수사 준칙에 따르면,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고려하여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사 장소와 방법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병실에서 무리한 조사를 감행하거나 절차적 편의를 이유로 무조건적인 출석을 강요하는 행위는 이와 같은 사법 행정적 지침에 위배되는 권한 남용의 여지가 큽니다.


제가 응급실 현장에서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서늘했던 밤의 기억이 자꾸만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진짜 올바른 공동체라면 겉으로만 안전을 외치고 화려한 구호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보내는 작은 신음과 눈빛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는 책임감부터 보여주어야 합니다.

겉보기만 번드르르한 말과 첫인상에 속아 넘어가기 쉬운 험한 세상일지라도, 28년 5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수술실과 응급실의 매서운 공기를 견디며 타인의 상처를 묵묵히 살폈던 그 시절의 다짐만큼은 절대 잊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차가운 시선이나 억울한 시시비비에 휘말려 홀로 마음을 다치고 고개 숙이고 계실 무고한 이들이 참 많을 줄 압니다. 그분들에게 응급실에서 수많은 눈물을 닦아주던 마음을 담아 나지막이 전하고 싶습니다. 당장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기죽거나 무너지지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은 결코 당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 길고 무거웠던 사색의 발걸음을 끝까지 마음으로 지켜봐 주셔서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