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만에 밝혀진 억울한 진실, '붉은 첩자 1969' 다큐 속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이 남긴 교훈

판문점을 넘어온 북한의 고위 언론인

2026년 2월 19일 방송된 붉은 첩자 1969는 북한의 고위 언론인이었던 이수근이 남한으로 귀순한 뒤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하고, 49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은 과정을 되짚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12회입니다. 방송은 한 사람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영웅에서 배신자로 바뀐 과정과 당시 수사 기록을 함께 살펴봅니다.

1967년 3월 22일 이수근은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취재하던 중 남한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는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을 지낸 북한의 고위급 언론인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북한의 주요 인사가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사건은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자유의 용사로 환영받은 이수근

남한 정부와 언론은 이수근을 북한 체제를 떠나 자유를 선택한 인물로 소개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그를 환영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고, 이수근은 강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서 겪은 생활을 증언했습니다. 시민들은 북한에 남아 있던 그의 가족도 남한으로 보내 달라는 서명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환영 뒤에서 이수근의 생활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정보기관의 감시가 계속됐고 그가 만나는 사람과 이동 경로도 관리됐습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안전을 걱정했던 그는 남한에서 기대했던 삶을 찾지 못한 채 점차 불안해졌습니다. 방송은 영웅으로 소개된 사람에게 실제로 어떤 생활이 주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되짚은 이수근의 귀순과 사형, 49년 뒤 무죄 판결

🎬 자유의 용사로 환영받았지만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과 뒤늦게 밝혀진 간첩 조작 사건의 기록


1969년에 시작된 국외 탈출과 추적

귀순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1969년 1월, 이수근은 안경과 가발, 수염으로 모습을 바꾸고 처조카 배경옥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 명의의 여권으로 출국했습니다. 두 사람은 홍콩을 거쳐 베트남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수근을 감시하던 정보기관은 뒤늦게 출국 사실을 파악하고 해외에서 대대적인 추적에 나섰습니다.

이수근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베트남 당국의 협조로 운항이 중단됐고, 그는 배경옥과 함께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자유의 용사로 환영받았던 인물이 다시 남한을 떠났다는 소식은 위장 귀순과 이중간첩 의혹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의 출국을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한 간첩 활동의 결과처럼 보도했습니다.


반공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붉은 첩자

1968년에는 청와대 습격 시도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남북의 긴장을 높인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강한 반공 분위기 속에서 이수근의 국외 탈출은 남한을 벗어나려 한 개인의 선택으로 검토되기보다 북한의 지시를 받은 간첩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를 환영했던 사람들의 기대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수근과 배경옥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수근은 1969년 5월 10일 사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7월 3일 형이 집행됐습니다. 선고 후 54일 만이었습니다. 배경옥도 중형을 선고받아 20년 넘게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수사 기록에서 드러난 조작의 정황

시간이 흐르면서 이수근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판단한 근거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판결의 중심에는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자백이 있었지만 정보기관의 불법 구금과 강압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증언과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간첩 행위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관련 자료와 증언을 검토한 뒤 정보기관이 감시 실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조작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방송 제목의 붉은 첩자는 1969년에 실제 정체가 밝혀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간첩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49년 뒤 내려진 무죄 판결

배경옥은 재심을 통해 2008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이수근 사건도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았고, 2018년 재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강압적인 수사에서 나온 자백을 믿기 어렵고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인정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붉은 첩자 1969는 단순한 탈출극이나 간첩 사건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냉전과 반공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진술이 어떻게 국가의 필요에 맞게 해석됐는지, 빠르게 집행된 형벌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어떻게 남겼는지 보여줍니다.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일이 늦게라도 필요한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회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