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밤샘 근무를 녹인 '용가리 간호사'의 따뜻한 기억
문득 살아가다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질 때면, 과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밤샘 근무를 서던 시절의 한 일화가 머릿속에 잔잔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떠올려봐도 참 유쾌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던 따뜻한 기억입니다.
어느 날 야간 나이트 근무를 하려고 출근을 했는데, 왠지 모르게 응급실 분위기가 평소보다 훨씬 어수선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을 거쳐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데, 덩치가 남산만 한 검은 양복 무리들이 응급실 복도 전체를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는 기가 막힌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앞 근무자에게 교대 인계를 받으면서야 그들의 정체가 유독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친 사내들의 무리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와 정형외과 진료가 정신없이 몰아치는 와중에, 레지던트 2년 차 선생님이 팔에 깊은 상처를 입은 한 환자를 처치실로 부르더니 얼른 상처를 꿰매는 봉합 치료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환자를 베드에 눕히고 엑스레이 필름을 뷰박스에 꽂아 불을 켰는데,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큰 수술을 할 뻔했다며 본격적으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도열한 덩치들의 매서운 시선이 수술대 위로 일제히 쏟아져 응급실 전체에는 그야말로 숨 막히던 적막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가라앉아 있어서, 저는 대충 눈치를 채고도 모른 척 넉살 좋게 대구 사투리로 툭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아저씨, 상처가 왜 이렇게 났어요?" 그러자 그 거구의 문신 아저씨는 허허 웃으면서 대뜸 '내가 20대 1'로 싸웠다며 호기롭게 큰소리를 치더군요. 제가 털털하게 웃으며 "에이, 거짓말" 하고 맞받아치니까, 진짜라며 끝까지 우기면서도 아이처럼 맑게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 모습이 참 반전이었습니다. 겉모습은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음을 열고 마주하니 참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습니다.
모든 봉합 처치가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엉덩이 주사 두 대를 놓으려고 바지를 살짝 내렸는데 등부터 밑까지 문신이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정교한 그림에 호기심이 생겨 "아저씨, 등 뒤에 용가리가 아주 멋지게 휘감고 있네요!" 하고 툭 한마디를 건넸더니, 그 검은 양복 아저씨가 간지러운 듯 통쾌하게 웃어댔습니다.
이후 야간에는 조무사 선생님들이 안 계셔서 한창 바쁘게 피 검사 샘플을 트레이에 담고 복도로 나섰을 때였습니다. 복도 양옆에 쫙 서 있던 검은 양복 아저씨들이, 제가 지나가니까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굽히면서 "용가리 간호사님 가신다, 인사드려라!" 하고 꿈뻑 인사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그날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병리실로 도망쳤던 기억이 나는데, 그날 밤 저는 응급실의 팽팽했던 긴장감을 눈 녹듯 지워버린 '용가리 간호사'라는 정겨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피 튀기는 임상 바닥에서 덩치 큰 사내들과 넉살을 나누며 사람 냄새를 풍겼던 그날 밤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의료법 제15조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환자의 겉모습이나 사회적 신분, 편견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으며, 차별 없는 응급처치를 제공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가집니다. 사법 행정이나 치안 현장일수록 기계적인 규칙이나 선입견에만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을 수호하는 현장 실무자들의 정직한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삭막하고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인간적인 온기로 주위를 채워 나갔던 그날의 기억처럼 제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던 순수한 자부심이 제게는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진심을 담아 정직하게 이 블로그 공간의 가치를 책임져 나가겠습니다.
세상의 냉혹한 시선과 선입견 앞에 부딪혀 홀로 고단한 싸움을 벌이지고 계실 선량한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당장 눈앞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조급해하거나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거구의 문신 사내들마저 유쾌한 미소로 녹여내며 우렁찬 인사를 이끌어냈던 진짜 사람의 진심은, 결국 차가운 장벽을 허물고 온전하게 통하는 법이니까요.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