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 속에 갇힌 모성애의 사투, 그리고 행정 편의주의가 남긴 격리의 상흔
TV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위기 상황들을 지켜보노라면,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거리며 빛바랜 옛 기억이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온 세상이 전대미문의 방역 위기로 혼란스럽기 시작하던 그 무렵, 뜻하지 않은 명단 혼선이라는 차가운 덫에 걸려 억울하게 격리당해야 했던 소중한 내 아들, 그리고 방호복 속에 갇혀 남몰래 눈물 흘려야 했던 제 먹먹했던 격리 병동에서의 기억들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 가며 목이 메어옵니다.
공식적인 위기 뉴스가 연일 언론을 도배하기 바로 직전, 정체 모를 소문들이 흉흉하게 나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고에 진학해서 평일에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들이 주말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아이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들었다면서 참 선하고 좋은 말들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누구나 혹할 만한 긍정적인 내용이었기에, 그때는 그게 특정 단체의 교묘한 포교 수법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좋은 내용이구나 싶어 아들에게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말라고 가볍게 주의만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아들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 뒤 출근해서 정신없이 병원 일을 보고 있던 제게 관계 기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제 아들의 이름이 특정 명단에 묶여 있으니, 오늘부터 2주간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라는 기가 막힌 통보였습니다.
정말 가슴이 쿵 내려앉다 못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앞에 핏발이 서고 분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주중에는 과학고 기숙사 규칙에 묶여 공부만 하다가 주말에나 겨우 얼굴 한 번 보는데, 도대체 어디에 참여했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행정 착오고 잘못된 분류라며 담당자에게 항변하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침상 이름이 있으니 무조건 행정 명령을 따르라는 기계적이고 냉담한 목소리뿐이었습니다.
결국 멀쩡한 아이를 기숙사에서 데려와 방 안에 홀로 격리해야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얄팍한 행정 규칙에 묶여, 집안 방구석 한편에 죄인처럼 외롭게 갇혀버린 자식을 보는데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직후 방역 위기 소식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세상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집안에 아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둔 채, 저는 거점 지정 병원의 최전선 격리 병동으로 차출되어 집으로 퇴근조차 하지 못하는 지독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숨통이 턱턱 막히는 두꺼운 방호복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온종일 환자들을 돌보는 현장은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엄혹한 공간이었습니다.
언제쯤 이 재앙이 끝날지, 지금 집에서 혼자 무서워하고 있을 내 아이는 밥이나 제때 챙겨 먹고 있을지 걱정이 되어 문득문득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습니다. 밀려오는 눈물 때문에 고글 안쪽이 뿌옇게 흐려지는데도, 감염 위험 때문에 함부로 벗어 닦지도 못한 채 그저 안으로 꾹 참아내야 했습니다. 밤샘 근무를 돌며 현장을 지키던 모든 의료진이 서로의 지쳐가는 눈빛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 없이 고뇌를 삼켜야 했던 참 서글프고 지독한 현장이었습니다.
더 기가 막혔던 건 뉴스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무책임한 말들이었습니다. 특정 지역을 통째로 격리해야 한다느니, 감염된 환자들을 매정하게 취급하는 자극적인 단어들이 사방을 어지럽혔습니다. 그 차가운 시선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버티기 힘든 처지로 너무나 쉽게 밀려나곤 했습니다. 형평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규칙들과 앞뒤가 맞지 않는 통제 행정들이 발표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는 실무자들과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숨이 막혀올 뿐이었습니다.
당시 시행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제41조 및 제42조는 감염병 의심자에 대한 입원 및 격리 등 강력한 행정 처분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지만, 이러한 명령은 명확한 역학조사와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야 마땅합니다. 단순한 명단 혼선이나 행정 편의적인 착오로 인해 무고한 학생의 기본권과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명백히 위배하는 행위였습니다. 절차적 정당성과 정밀한 사실 확인이 결여된 통제는 방역 시스템에 대한 신뢰 대신 깊은 불신과 억울함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단숨에 깨뜨려 버리던 영화 속 서사처럼, 당시 현실의 지침들도 진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일상이나 최전선 의료진들의 안전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가혹한 희생과 억울한 명단 혼선 위에서 완성되는 규칙이 과연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싶어 씁쓸한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저 숫자와 서식만 따지는 탁상공론 앞에 가슴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 같았지만, 저는 땀으로 범벅이 된 방호복을 끝까지 벗어던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내 아이를 다시 만나 건강하게 안아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 순간을 버텨냈습니다. 자식을 향한 모성애의 무게를 양어깨로 지탱하며, 그 길고 캄캄했던 고립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때 겪은 억울한 기억과 삶에 남은 상처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타인의 속사정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서식만으로 함부로 재단하는 세상이 참 차갑고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올바른 공동체라면 화려한 지표를 내세우며 사람들을 억압할 게 아니라, 음지에서 소외당한 채 눈물 흘리는 이들의 목소리부터 따뜻하게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그 혼란스럽고 무서웠던 소동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내 아이의 방패막이가 되려 애썼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로부터 몇 달,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뉴스에서는 당시 방역 당국에 제출되었던 명단 중 일부가 허위 명단이었거나 심각한 행정 오류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흘러나왔습니다. 비록 말도 안 되는 오해와 차가운 규칙이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뜻하지 않은 시련 앞에 혼자 속을 끓이며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고 계실 수많은 분들의 하루가 오늘은 조금이나마 덜 외롭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