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했던 삶의 문턱에서 마주한 금융 사기의 덫과 시스템의 차가운 시선

남편과 헤어진 후, 대학병원이라는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직장 뒤에서 턱없이 부족한 월급으로 매달 다가오는 생활고를 버텨내느라 숨이 막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쪼들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와 살아남으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금을 융통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시중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해 이리저리 밀려나다가, 결국 대부업체 같은 제3금융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당장 한 푼이 급했던 제 처지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쉽게 절차를 진행해 주겠다는 그곳의 조건이 야속하게도 붙잡고 싶은 마지막 동아줄처럼 보였습니다.


서류를 신청하자마자 한 상담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말을 어찌나 번지르르하게 잘하는지 홀린 듯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차를 밟으려면 인증용 체크카드가 꼭 필요하다는 조건을 대더라고요. 책 속에 카드를 끼워 넣은 사진을 찍어 보내고 포장한 상자 상태까지 확인시켜 주면, 퀵서비스 기사가 제가 일하는 병원 앞으로 직접 찾아와 가져가겠다는 식이었습니다.

당장 하루하루가 급해 눈앞이 캄캄했던 저는, 그게 저를 집어삼킬 사기단의 덫인 줄도 꿈에도 모르고 바보같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카드를 건네고 말았습니다. 일말의 의심도 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찾아온 퀵 기사에게 상자를 건네준 것입니다. 오직 이 지독한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에 눈이 멀어, 그들이 파놓은 함정을 진짜 나를 살려줄 생명줄인 줄 알고 믿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자를 보낸 이후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한 자금은 진행되지 않았고, 상담원과의 연락은 그 길로 완전히 끊겨버렸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며 온몸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는데, 얼마 뒤 경찰서에서 청천벽력 같은 연락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제 체크카드가 금융 사기 조직의 불법 거래 계좌로 넘어가서, 다른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을 빼돌리는 경로로 이용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습니다. 형사의 목소리를 제 귀로 직접 들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가 막힌 현실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에 따르면 접근매체(체크카드, 인증서 등)를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49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사기 범죄의 고의가 없었더라도 계좌 제공자 역시 처벌이나 행정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대출 절차를 이유로 카드 배송을 요구하는 것은 100% 보이스피싱 수법이라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당장 눈앞이 캄캄했던 서민에게는 그런 법조문보다 당장의 생계가 먼저 보였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녹초가 되도록 겨우 야간 근무를 마치고,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로 향하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조사실 의자에 앉아 면담을 하는데, 형사는 저를 이미 깊이 연루된 사람으로 확신한 듯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방 안 분위기에 숨이 턱 막혀왔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당황하거나 무서워서 몸을 덜덜 떨지는 않았고, 죄책감 속에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내 자신이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경찰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제가 간신히 입을 열어 뱉은 말은 "신고를 해도 어차피 못 잡을 줄 아니까요"였습니다. 제 입에서 툭 튀어나온 그 한마디 뒤로 밀려오는 비참함과 서러움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 전체가 단단히 가로막힌 것처럼 먹먹해지기만 했습니다. 담당자는 모니터 가득 복면을 쓴 채 은행 ATM기에서 돈을 빼내 가는 이들의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데 어떻게 다 잡아내겠냐는 답변을 던졌습니다. 붙잡아줄 울타리 하나 없는 서민의 억울함 앞에, 기관마저 어쩔 수 없다는 듯 철저히 베일에 싸인 범인들을 못 잡는다며 툭 내던진 현실이 참 막막했습니다.


명백한 금융 사기의 피해자인데도 도리어 책임을 전가당하는 입장이 되어 조서 지면에 사인을 하고 있으니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제 삶 전체가 통째로 부정당하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한테 앞으로 살아갈 힘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 앞이 완전히 캄캄해져서 그저 눈물만 펑펑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제 억울한 사정을 알아챈 경찰관분이 안타까웠는지, 서류 관계를 세심하게 확인하여 검찰 조사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지칠 대로 지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불 꺼진 컴컴한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멀리 과학고 기숙사에서 혼자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을 소중한 아들 얼굴이 먼저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못난 엄마를 만난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가슴이 턱 막혀왔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방구석에 주저앉아, 멀리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행정적 수순에 급급해 서민을 먼저 몰아세우는 차가운 현실이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시스템이 진짜 해야 할 일은 실적이나 결과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우리처럼 아무것도 몰라 당해야 했던 선량한 이들의 억울한 눈물부터 닦아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 지독한 사건을 겪으며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저는 기숙사에 가 있는 소중한 내 아들을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단단한 무게를 양어깨에 짊어진 채, 그 암흑 같던 절망의 터널을 묵묵히 버텨내며 이겨내 온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엄마도 아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가슴을 쥐어짜며 흐르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혹시 지금 세상의 말도 안 되는 덫에 걸려 도리어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만큼은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길고 무거웠던 사색의 발걸음을 끝까지 마음으로 지켜봐 주셔서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