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기획사의 먹통이 된 전화선 너머, 낯선 서울 하늘 아래서 깨달은 임상의 가치

과거 찬란한 무대를 동경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기억은 언제 봐도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가만히 덮어두었던 젊은 날의 뜨거웠던 열정을 돌이켜보노라면, 대학병원에 입사하여 임상 현장의 최전선에서 삼교대 근무를 서던 간호사 2년 차 시절, 마음 한편에 대중 예술인이라는 소박한 꿈을 품었던 역사가 떠오릅니다.

가쁘게 몰아치는 병원 스케줄 속에서 육체적 피로가 머리끝까지 쌓여가던 어느 날, 겨우 3일간의 귀한 휴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야간 근무를 간신히 마치자마자 뜬눈으로 들뜬 마음을 안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평생 몸담아온 정든 일터를 잠시 떠나 오직 꿈 하나만을 좇아 낯선 길을 나섰던, 제 인생에서 가장 무모하고도 설레던 도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설레는 하늘길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한 저는, 미리 수첩에 꼼꼼히 적어두었던 연예 기획사 주소지를 향해 택시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단역이라도 좋으니 합격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젊은 지망생들이 이미 건물 복도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순서가 되어 오디션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책임자는 대뜸 회원 등록비 3만 원을 내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던졌습니다.

사전 공고 어디에도 없던 비용 요구였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정직하게 돈을 지불했고, 그들은 2차 미팅을 위해 외곽의 낡은 건물로 저를 다시 유도했습니다. 그곳의 책임자는 제게 오늘 밤 당장 사극 촬영에 투입될 수 있으니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대기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습니다.


당장 밤에 날아올 연락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저는 근처 숙소를 빌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밤새도록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 늦은 시각까지 휴대전화만 바라보았지만 전화선은 철저하게 먹통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획사 명함에 적힌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것은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오니라는 차가운 기계음과 지직거리는 거절 신호뿐이었습니다. 간절한 꿈을 악용해 돈만 가로채고 유령처럼 도망쳐 버린 이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온몸의 피가 바짝 마르는 듯한 허탈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금쪽같은 휴가까지 쪼개어 서울까지 올라갔건만, 유령 번호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방구석에서 혼자 속이 끓어오르고 분통이 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26조에 따르면, 영리를 목적으로 대중문화예술인의 활동을 기획·알선·대리하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을 하려는 자는 반드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할 법적 의무를 집니다. 만약 이를 등록하지 않은 채 오디션 등록비 등을 요구하거나 가짜 번호로 지망생들을 속이는 행위는 동법 제40조에 따른 처벌은 물론 형법상 사기죄까지 적용되는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자신의 본래 목적을 숨긴 채 취약한 지망생들의 절박한 열정을 악용하는 부실 업자들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공공 안전망이 수호해야 할 가장 정직한 본분입니다.


현실 세계에는 이렇듯 사람들의 간절한 꿈과 열정을 교묘하게 악용해서 눈앞의 돈만 가로채고 책임을 회피하는 부당한 일들이 존재하곤 합니다. 달콤한 감언이설에 속아 3일간의 금쪽같은 휴식을 짓밟히고 홀로 눈물을 삼켜야 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참 외롭고도 쓰라린 흔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슬럼프와 헛된 신기루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환자들의 숨통을 붙잡기 위해 열심히 임상 실무에 전념하며 간호사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3일간의 휴식 끝에 마주한 현실은 3만 원의 가입비와 없는 번호라는 상처뿐이었지만, 낯선 서울 하늘 아래서 홀로 눈물 훔치며 깨달았던 그날의 교훈은 저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제는 눈앞의 교묘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제가 직접 겪고 느낀 정직한 이야기들로 이 블로그 공간을 차분하게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잘못된 가면을 쓴 이들의 덫에 걸려 홀로 속을 끓이고 계실 선량한 분들이 있다면, 수화기 너머 차가운 기계음 앞에서도 기어코 제자리로 돌아와 생명을 지켜내던 그날의 굳건한 긍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젊은 날 오프를 쪼개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 서툰 열정과, 부실 기획사의 먹통이 된 전화선 앞에서 눈물 흘리며 깨달았던 임상의 소중한 가치가 지금의 저를 지탱하는 정직한 자부심입니다. 앞으로도 제 손끝으로 빚어낸 기록들로 이 블로그 공간을 떳떳하게 채워나가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