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말과 권리가 꽁꽁 묶였던 암흑기, 다큐 '유신헌법과 긴급조치'가 보여준 시대의 비극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1972년 10월 17일
2025년 3월 13일 방송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1972년 10월 17일 선포된 비상계엄과 유신헌법의 성립, 이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긴급조치의 실체를 되짚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66회입니다. 방송은 헌법 조문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제도의 변화가 시민의 말과 언론, 학교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당시 기록과 증언을 통해 보여줍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국회는 해산됐고 정치 활동과 집회가 금지됐습니다. 서울 도심과 대학 주변에는 군인이 배치됐으며 언론 보도도 통제됐습니다. 정부는 남북 대화와 평화통일을 준비하려면 새로운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헌법 개정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는 점은 결과를 이해할 때 함께 살펴봐야 할 배경입니다.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헌법
방송은 유신헌법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1972년 5월부터 궁정동의 안전가옥에서는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의 비밀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관계자들은 외국의 장기 집권 제도와 대통령 중심 헌법을 검토했고 그 결과는 같은 해 10월 공개된 유신헌법의 구조에 반영됐습니다.
유신헌법이 시행되면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는 사라지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게 됐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늘어났으며 중임 제한도 없어졌습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추천할 수 있었으며 법관 임명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사이의 균형이 대통령에게 크게 기울어진 구조였습니다.
🎬 유신헌법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과 긴급조치 아래에서 말할 자유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헌법을 비판하는 말까지 금지한 긴급조치
유신헌법 제53조는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에 위협이 있다고 판단하면 국정 전반에 걸쳐 긴급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권한은 국민의 기본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법원의 심사를 받지 않는 조치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대통령의 판단을 국회나 법원이 사전에 견제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유신체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됐습니다.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제1호는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개정과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조치를 비판하는 행동도 처벌 대상이 됐습니다. 긴급조치 제2호는 위반 사건을 담당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했습니다.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와 구금, 압수와 수색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일도 처벌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학생과 언론의 일상까지 바꾼 긴급조치 제9호
1975년 5월 선포된 긴급조치 제9호는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표현과 집회뿐 아니라 학생의 정치 참여와 허가받지 않은 집회까지 금지했습니다. 관련 내용을 담은 문서나 책을 제작하고 배포하거나 소지하는 행동도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말을 전한 사람까지 조사받으면서 시민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대화할 때도 주변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언론 역시 정부가 허용한 정보와 표현 안에서 보도해야 했습니다. 유신체제를 지지하는 내용은 반복적으로 전달됐지만 반대 의견은 신문과 방송에 실리기 어려웠습니다. 학생과 종교인, 언론인과 시민들은 시국선언과 개헌 청원으로 저항했으며 정부는 긴급조치와 학교 징계, 언론 통제로 대응했습니다. 방송은 법률 조항이 평범한 사람들의 말과 관계까지 바꾼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기록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기본권의 의미
마지막까지 유지되던 긴급조치 제9호는 1979년 12월 해제됐지만 긴급조치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피해는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이후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가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어긋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거나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도 이어지면서 당시 판결과 수사 과정이 다시 검토됐습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과거의 정치 제도를 암기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헌법이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국가기관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기준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부를 비판하고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는 말이 보호돼야 하는 이유, 비상 상황에서도 권력에 대한 통제와 사법적 심사가 필요한 이유를 당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하는 회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