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연기 속에 갇혔던 5교시 교실과 지워지지 않는 시대의 잔상

그날은 유독 평온했던 날로 기억합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지나 찾아온 5교시 수업 시간, 갑자기 사방에서 매케한 냄새가 진동하며 눈과 목이 사정없이 따갑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만 이상한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미 반 학생 전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비벼대며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눈물이 쏙 빠지는 매운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이윽고 학교 스피커를 통해 창문을 닫으라는 다급한 방송이 흘러나왔고, 창가에 앉은 친구들은 일제히 일어나 창문을 모두 닫았습니다. 하지만 낡은 창틀 틈새를 뚫고 끝없이 밀려드는 가스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목이 따갑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수업은 계속되었지만, 친구들 모두 콜록거리며 칠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수업이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다시 스피커에서 긴박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인근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살포한 최루탄 가스가 바람을 타고 고등학교 교정까지 번져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학교에서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만 할 테니 다들 가방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일찍 집에 간다고 마냥 좋아서 소리를 질렀을 텐데, 가방에 책을 허겁지겁 집어넣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시대의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학교를 나선 친구와 저는 집으로 곧장 가지 못했습니다. 학교와 대학교의 거리가 걸어서 10분밖에 되지 않다 보니,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겁도 없이 발걸음을 돌려 시위 현장인 대학교 근처로 향했습니다. 막상 도착한 대학교 앞 거리는 온통 어수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시위를 진압하러 투입된 전경들이 길거리에서 대치하며 무자비한 진압 도구로 사람들을 거칠게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청춘들을 저렇게까지 짓밟을 수 있는 건가 싶어, 직접 내 눈으로 보면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당시 우리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지만,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대학생들의 평화적인 외침마저 불법 시위로 규정하여 엄격히 통제하곤 했습니다. 집시법 위반이라는 명목 하에 영장도 없이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무고한 학생들까지 연행하던 과도한 공권력의 집행은, 당시 법조계와 행정학적 관점에서도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 차가운 공권력 아래 짓눌리던 엄혹한 시대였습니다.

우리 역시 언제든 무고한 표적이 되어 억울하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큰길에 서 있지 못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매서운 감시의 눈길을 피해 좁고 어두운 동네 골목길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기 무서웠던 친구와 저는 결국 우리 집으로 가 같이 있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대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혹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저렇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이 과연 말이나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벌건 대낮에 최루탄을 던지고 학생들을 진압해야만 했을까요. 제가 교실에서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그 매운 최루탄의 눈물이 자꾸만 겹쳐 보여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평범한 청춘들을 위협하던 그 매서운 시절, 겁에 질려 뛰어가던 그 좁은 골목길의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진짜 올바른 국가라면 구호나 거친 통제로 사람들을 누를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부터 먼저 지켜주어야 합니다. 매캐한 연기와 엄혹함이 거리를 지배하던 시절, 겁에 질린 채 눈물을 훔치던 그 5교시 교실의 풍경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서글픈 잔상으로 짙게 남아 있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