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목발 난동 속에서 사수했던 전산 차트와 의료법 제12조의 가치
대학병원 정형외과 병동으로 처음 발령을 받았던 신입 시절의 기억들이 찌릿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환자들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응급 상황 속에서,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긴장감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절이었는데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를 바삐 굴리며 주변을 잔뜩 경계하던 그때 제 모습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막막한 눈빛으로 자꾸만 가슴이 아려오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마음입니다.
당시 제가 정형외과 병동에서 처음 드레싱 순회를 돌며 마주했던 입구 쪽 첫 번째 침대의 어르신 역시, 당뇨 합병증으로 양쪽 다리를 허벅지 근처까지 절단해야 했던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아픈 사연을 품고 계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불을 걷었을 때의 충격에 차마 내색조차 하지 못한 채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차가운 선고 서류를 마주하며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명의 무게를 온몸으로 절감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주치의가 빨리 오지 않는다며 잔뜩 격분한 젊은 환자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돌진해 온 적이 있었는데요. 다짜고짜 들고 있던 목발로 데스크 상판을 세게 내리치고, 위에 올려둔 환자 차트와 서류들을 바닥으로 거칠게 내팽개쳤습니다. 순식간에 어수선해진 현장에서 전 너무 놀라 몸이 굳어버렸죠. 다행히 연차 높은 선배가 급하게 연락을 취해 전공의 선생님께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간호사 데스크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소동을 들은 보호자들은 순식간에 데스크 쪽으로 몰려왔습니다. 치료 카트를 겨우 붙잡은 채 환자를 진정시키고 상황을 수습하느라 한바탕 수고를 해야 했는데요. 1분 1초가 긴장이었고 숨이 막히던 그때의 정형외과 병동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버티던 제 젊은 날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사고로 뼈가 부러져 꼼짝 못 하는 환자들을 돌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환자 이름과 처방을 몇 번씩 확인하느라 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죠.
대한민국 '의료법 제12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의료용 시설이나 기재, 서류 등을 파괴하고 손상하거나 의료인과 실무자를 폭행·협박하여 진료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해 현장의 안전을 위협한 자는 일반 범죄보다 무거운 사법적 처벌을 받게 됩니다. 또한 '보건의료기본법 제5조'에 의거한 분석이 보여주듯, 보건의료인은 긴박한 병동 환경 속에서 자신의 학식과 경험, 양심에 따라 환자에게 양질의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실무 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할 법적 책임을 지닙니다.
자본의 화려한 지표나 상위 행정 서식에 매몰되지 않고, 목발 난동 같은 치명적인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환자들의 생명망을 사수하는 현장 실무 인력들의 정직한 노동 가치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법과 사회 제도가 수호해야 할 가장 정당한 본분입니다.
아찔한 목발 소동을 겪고 밤새 침상이 부족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버텼던 건, 결국 내가 돌보는 환자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서툴지만 사명감 하나 덕분이었습니다. 현실의 거친 일터는 때로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그 안에서 기어이 버티고 서 있게 만드는 건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겠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단단한 책임감과 노동의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환자가 목발로 데스크 위 상판을 내리치며 서류들을 내팽개치던 그 난리통 속에서도 치료 카트를 붙잡고 정직하게 전산 차트를 사수했던 제 정형외과 신입 시절의 기억은 가식 없는 제 진짜 자산입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상실하셨던 첫 번째 침대 할아버지의 선고 서류 앞에서 의연하게 면허의 본분을 다했던 제 실무 기록은 이 비평실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사법 보루입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