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간호사의 서툰 눈물을 채운 가족의 팔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가치

사회의 시선과 주변의 기대를 맞추느라 내 진짜 감정은 꾹꾹 누르고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 노동은, 매일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삶의 참 묵직한 숙제 같습니다. 언제나 반듯한 이미지 유지와 감정 통제를 요구받는 환경 안에서, 조직 내부의 압박 앞에 하고 싶은 말을 참아내며 겪어야 하는 내면의 갈등은 평생 쌓아온 사회적 중심을 흔들기도 합니다.


제 신입 간호사 시절의 속상했던 기억들이 찌릿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서툰 손끝 탓에 환자들의 가는 정맥 혈관을 한 번에 찾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요.

예민해진 환자들로부터 거센 질타와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제 감정은 철저히 숨긴 채 "죄송합니다"라며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속으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애써 미소를 장착해야 했던 그 시절은 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환자들의 거친 반응을 보고 나면, 밀려드는 속상함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 아무도 없는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죽여 눈물을 훔치곤 했었죠. 하지만 늘 가혹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잔뜩 긴장해 있는 저를 보고는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편하게 찔러봐요"라며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시던 환자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따뜻한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긴장이 사르르 풀리면서, 거짓말처럼 첫 정맥 주사를 한 번에 성공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실력을 키워 떳떳한 전문가로 서고 싶던 신입 시절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을 붙잡고 정맥 주사 연습을 자청하며 밤낮으로 매달렸는데요. 주삿바늘이 무섭다던 둘째 오빠는 제 연습 시간을 피하려고 일부러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버티다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온 가질이 그런 눈물겨운 협조와 헌신을 보태준 덕분에, 저는 결국 손가락에 있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혈관까지 단 한 번에 찾아내 성공하는 베테랑 간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밤 팔을 내어주며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준 가족들이 없었다면, 그 힘든 초년생 시절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싶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주사 숙련도가 높아진 이후, 병원 안에서 제 위치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환자들의 살갗 아래 숨어있는 미세한 혈관까지 정확하게 찾아내다 보니, 다른 병동에서 주사를 실패해 쩔쩔맬 때마다 저한테 'SOS 콜'이 오곤 했었죠.

그때마다 해결사처럼 파견을 가 다른 병동 환자들의 혈관을 단번에 잡아내곤 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신입 시절의 눈물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병원의 핵심 인력으로 인정받았던 그 시절의 자부심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에 깊은 훈장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감정 노동과 실무자들의 권익은 법적인 안전망을 통해 보장받아야 마땅합니다.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환자나 고객의 폭언, 무리한 질타 등으로 인해 근로자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환경에 노출될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이나 전환, 치료 및 상담 지원 등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의료법과 환자안전법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보건의료인은 침습적 의료 처치를 시행하기 전에 환자의 식별 데이터와 처방 내역을 철저하게 대조해야 할 법적 주의 의무를 지닙니다. 외부의 지표나 기계적인 수치 규정 뒤에 숨어 현장 실무자들의 감정적 혹사나 인력 부족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관행은 공공 보건 안전망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정석대로 실력을 쌓아 환자의 안전을 사수하는 정직한 노동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마땅히 수호해야 할 가장 정당한 가치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안감을 이용해 부실한 정보들을 늘어놓는 그런 얄팍한 방식에는 더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일시적인 수치에 연연하기보다, 제가 임상 현장에서 온몸으로 버텨내며 깨달았던 소중한 경험과 진짜 사람 사는 온기를 있는 그대로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다른 병동의 SOS 콜을 해결해 주던 그 시절의 자부심처럼, 제 글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나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입 시절의 서툰 눈물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밤 둘러앉아 팔을 내어주던 부모님과 오빠들의 헌신적인 연습 지원 흔적들은 제 임상 시절이 남긴 가장 따뜻한 사실의 기록입니다.

환자들의 날카로운 질타 앞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단 한 줄의 처방이라도 더 정교하게 잡아내려 바늘을 쥐었던 제 수술실 간호사로서의 기억은 어떠한 복사형 양식이나 프로그램 꼼수가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제 자산입니다. 저는 이 공간에 오직 정직한 인간의 진심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