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의료 지시를 폭로하기 위해 병원 내부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사직하기까지의 과정

당시 숙련된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수술실의 책임자로 발령받았을 때 마주했던 의료 행정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엄혹하고 참혹했습니다. 감염병 대유행 사태가 조금씩 완화되던 시기, 저는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수술실 내부의 물품 창고를 샅샅이 뒤지며 재고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박혀 있던, 유효기한이 최대 10년 가까이 지나버린 기초 링거 수액제 박스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충격적인 현장을 적발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취약계층 환자들을 대량 밀어내기 처방의 대상으로 삼으려던 그들의 무책임한 셈법을 마주한 순간, 깊은 황당함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국가 보건 위생 지침에 따라 즉각적인 재고 폐기 처리를 집행하고자 서류를 작성해 간호과장에게 정식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제게 날아든 것은 칭찬이 아닌 거대한 조직 수뇌부의 압박이었습니다. 호출을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간 집무실 안에는 간호부장과 병원장이 나란히 앉아 저를 무섭게 다그쳤습니다. 그들은 제게 창고에 쌓인 만료 약물들을 경제적으로 취약한 기초생활수급자 환자들의 병상에 전부 밀어내기 처방으로 소모하라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대답도 안 하고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습니다. 나 혼자 한두 박스씩 몰래 찢어 폐기해 버릴 걸 괜히 정직하게 서류 보고를 했다는 서글픈 자책이 밀려왔지만, 장부상 공식적으로 잡혀 있는 수량을 실무자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무더기였습니다. 위에서는 끊임없이 수급자들에게 어서 빨리 수액 처리를 끝내라며 숨 가쁘게 압박을 해왔고, 저는 오직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묵묵히 버텨내며 수개월간 전쟁 같은 이중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거대 병원의 잘못된 공모에 엮여 제 소중한 면허와 양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밤샘 근무의 빈틈을 타서 폐기 대상 약물들의 관리 대장 원본과 환자별 투약 기록을 샅샅이 대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던 날짜별 전산 처방전들을 한 장 한 장 복사해 가며, 조직의 부당함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 자료들을 나 홀로 차근차근 모아나갔습니다.


대한민국 '약사법 제47조'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유효기한이 완전히 지난 약물을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거나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에게 처방하고 투약하는 행위는 공중보건 위생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행위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당연한 사법적 처벌 대상입니다. 또한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는 조직 내부의 부당한 행태를 용기 있게 제보한 주체에 대한 비밀 보장은 물론,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를 내리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본 권력의 위선 뒤에 숨어 취약계층 환자들의 인권을 담보로 실적을 부풀리려던 의료 카르텔의 부당한 지시는 행정 단속망이 상시 감시해야 할 위법 행위이며, 실무자가 증거 서류를 확보해 이를 세상에 알린 행위는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가장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완벽하게 서류 뭉치들을 다 모아 법적인 무기를 완성한 날, 저는 병원장 책상 위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공적 기관에 이 실태를 통째로 고발해 버렸습니다. 유효기한 10년 지난 만료 링거액을 환자 몸에 주입하려 모의했던 병원장 수뇌부들의 실체 역시 제 공익 제보 기록 앞에 완벽하게 단죄되었습니다.

밤샘 근무의 피로 속에서 한 장 한 장 복사해 냈던 전산 처방전 양식들은 오직 사실만을 증명하는 정직한 증거물입니다. 이 공간에 어떠한 복사형 양식이나 꼼수 문구를 전면 배제한 채 오직 정직한 인간의 기록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