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시작된 거대 병원의 임금 체불, 그 고독했던 흔적들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사투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로 온 시스템이 마비될 때, 현장에서 책임을 진 이들의 신속하고 냉철한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예기치 못한 위험 신호와 통제 불능의 상황 앞에서 공공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 내리는 즉각적인 결단을 생각하노라면, 가만히 덮어두었던 대학병원 수술실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병원 수뇌부의 부당한 의료 지시에 정면으로 맞서며 제 면허의 책임을 다했던 아주 치열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종합병원 수술실은 감염병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술실 창고에 쌓여 있던 의료 물품들을 철저히 전수 조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무려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유효기한이 완전히 지나버린 기초 수액제 박스들을 대량으로 발견하고 깊은 충격에 휩싸였었지요.

즉각 폐기 처분 서류를 올렸으나 병원장과 간호부장은 도리어 저를 집무실로 호출하더니, 이 약물들을 경제적으로 취약한 기초생활수급자 환자들에게 처방하여 전부 소모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돈 없고 힘없는 환자들의 안위를 담보로 병원의 이속을 챙기려는 거대 조직의 위선 앞에, 온몸의 피가 바짝 마르는 듯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병원 수뇌부의 부당한 지시에 동조할 수 없어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지만, 퇴사 후 마주한 세상의 공기는 참으로 싸늘하고 야속했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관계 기관으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위해 직접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지요. 병원 상급자들이 부를 때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출장 조사까지 가주던 이들이, 평범한 현장 간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저 먼 곳까지 직접 오라 가라 지시하는 행정 편의주의적 태도에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전화를 붙잡고 당당하게 따졌었지요. "당신들은 상급자가 부르면 다 가면서, 저한테는 왜 그 먼 곳까지 직접 오라는 겁니까?" 하고 말을 하니 수사관은 당황한 듯 대답을 피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더군요. 권력 앞에는 유순하고 약자 앞에는 군림하려는 이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마주한 것 같아 참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거대한 조직의 은밀한 부당함을 세상에 증명해 내는 과정은, 말 그대로 매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일주일 후 이번에는 관련 부처로부터 병원 측이 수간호사인 제 월급과 퇴직금의 일부를 교묘하게 누락시켰으니, 밀린 체불 임금을 확인하고 수령해 가라는 통지서가 날아왔지요. 대형 의료기관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실체가 얼마나 부실하기에 이토록 치졸한 보복을 일삼는가 싶어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버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에서 조사관들이 저를 직접 찾아와 대형 의료 기관들의 음성적인 부당 행태를 조사하며 공조를 요청했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현장의 모든 진실을 명확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뒤 관련 기관으로부터 발송된 우편물을 확인하고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저는 한 치의 틈도 없는 서슬 퍼런 목소리로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었지요.

"나를 부당한 의료 행위에 강제로 가담시키려 했고, 유효기한이 10년이 넘은 수액제를 힘없는 기초생활수급자 환자들의 몸에 주입하려 모의했던 병원장과 수뇌부들을 사법적으로 가장 엄중하게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 권력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 서민의 정직한 외침 앞에, 의외로 당국의 수사관조차 고압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매우 공손하고 깍듯한 어조로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더군요.


대한민국 약사법 제47조와 의약품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유효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저장·진열하고 처방하는 행위는 국민 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행위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는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이나 이를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보장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보를 이유로 한 해고나 불이익 조치, 임금 체불 같은 치졸한 보복 행위를 전면 금지하여 이를 위반하면 무거운 사법적 처벌을 받게 합니다. 거대 자본 권력의 위선에 맞서 날짜별 처방전 데이터를 수집해가며 비리를 입증해 낸 공익 제보의 가치야말로, 우리 사법 행정 시스템이 반드시 보호해야 할 가장 정직한 법적 보루입니다.


결국 무려 6개월이라는 기나긴 정화의 세월이 흐른 뒤, 공단으로부터 공익 제보에 따른 정당한 포상금을 지급할 테니 계좌번호를 확인해달라는 연락이 날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포상금이라는 명예의 훈장은, 거대 조직의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 밤낮으로 처방전을 직접 인쇄하느라 소모했던 수많은 종이 기록들과 극심한 과부하로 통째로 망가져 폐기해야 했던 프린터기 기기 값의 실질적인 보상액에 불과했지요. 물질적인 지출이 더 커서 그야말로 고독한 전쟁이었지만, 부실 수액을 폐기 처분하려 사직서를 던졌던 제 수술실 안에서의 선택은 가장 정당한 방어벽이었습니다.


6개월의 세월 동안 가득 채워 넣었던 처방전 기록들과 망가진 프린터기의 흔적들은 오직 사실만을 증명하는 정직한 증거물입니다. 내 면허의 책임을 다해 약자들의 생명망을 지켜내고자 했던 이 선택은 오직 제 삶에만 존재하는 굳건한 자존심의 버팀목입니다. 행정적 셈법에 타협하지 않고, 앞으로도 이 블로그 공간에 오직 진실만을 담은 정직한 기록만을 묵묵히 채워나가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