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이 된 대학병원, 태풍 매미의 야간 근무와 비상 전원의 무게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때로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멈추게 만들곤 합니다. 예기치 못한 기상 이변이 들이닥칠 때마다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 시스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묵직하게 실감하게 되는데요. 과거 병원에서 삼교대 나이트 근무를 서던 시절,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병원의 전력망이 완전히 차단되어 암흑 속에 갇혔던 아찔한 기억은 날씨가 개인의 삶과 생명에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지를 여전히 되새기게 만듭니다.


2003년 가을 태풍 매미 정면 상륙과 전력망 마비의 공포

대한민국 전체를 큰 혼란에 빠뜨렸던 역대급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정면으로 강타했던 가을의 그날 밤, 저는 정형외과 일반 병동에서 밤을 새우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거센 폭풍우가 병원 창문을 깨부술 듯이 몰아치던 새벽녘, 갑작스럽게 병원 내부의 전력망이 마비되며 칠흑 같은 암흑이 내려앉았습니다.

온 건물의 불이 동시에 꺼지던 순간에 밀려온 공포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는데요. 전기가 끊기면 즉각적으로 환자의 생명 신호가 위협받는 최전선의 공간이었기에, 어둠 속에서 환자들의 안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상황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자동 배터리가 없는 구형 기계의 경고음, 캄캄한 어둠을 뚫고 복구된 비상 전력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자 환자의 바이탈을 표시하던 모니터 장치 중 내부 예비 배터리가 없는 일부 구형 기계들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리며 무기력하게 꺼져버렸습니다. 다행히 제가 근무하던 정형외과 병동에는 당장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중환자가 없었지만, 1분 1초의 전력 마비로도 생명이 위험해지는 중환자실이나 빗길 사고로 중상해 환자들이 밀려들던 응급실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비상 발전기가 가동되기 전까지의 그 짧고 캄캄했던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환자의 숨을 붙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을 의료진들의 노고 덕분에 병원은 큰 사고 없이 상황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비상 전력이 들어오며 기계들이 다시 켜졌을 때야 비로소 모두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습니다.


국가 방재 위기관리 책무, 예비발전설비 및 무정전 전원장치(UPS)의 법적 기준

고단했던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해 마주한 바깥세상은 전봇대가 쓰러지고 도로나 시설이 물바다가 된 참혹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재난 앞에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대한민국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 규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태풍이나 홍수 같은 대형 재난 상황에서 주요 기간 시설과 국민의 생명망을 보호하기 위한 위기관리 조치를 신속하게 이행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의료기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료법 제36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34조에 의거하여 종합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은 정전 시 환자의 생명 안전을 수호할 수 있도록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에 비상 전원을 즉각 공급할 수 있는 자가발전설비와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의 안전 인프라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철저히 점검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닙니다.

재난 대책의 사각지대나 야간 근무 환경을 방치하는 관행은 결국 공공 보건의 안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현장 인력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 안전을 보장하는 행위야말로 법 제도가 수호해야 할 올바른 가치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은 단순히 서류상의 매뉴얼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암흑이 찾아왔을 때 현장의 실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흙먼지 날리는 재난의 흔적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현장의 기록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정직한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