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내리사랑과 보건 복지 인프라가 짊어져야 할 간병의 무게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고 가족 안에서조차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노년의 현실은, 참 쓸쓸하고도 가슴 무거운 아픔인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돌봄 시설이라는 선택은 아픈 어르신을 모시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일 때가 많지만, 평생을 자식에게 바쳐온 부모 세대에게는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다는 지독한 서글픔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건 단순히 주기적으로 비용을 보내드리고 깨끗한 환경에 모시는 그런 물질적인 채움이 아니었습니다. 내 청춘을 온전히 쏟아부어 일구어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쓸모 있는 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온기를 나누는 일이었죠. 눈에 보이는 부양 너머로 우리가 진짜 놓치고 있는 부모님의 마음자리는 어디쯤일까 가만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식으로서 엄마의 그 고단함을 뻔히 다 알면서도, 당장 내 앞가림과 먹고사는 일상에 치여 그 무거운 짐을 선뜻 나누어 짊어지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차오르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차마 고개를 들기가 힘들어지는데요. 정말 딱 한 번만이라도 제 어머니의 시간도 스무 살 청춘으로 되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간병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우리 어머니 또한 환하게 웃으며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다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과거에 먹고살기 바빠서, 혹은 시대가 주는 짐을 지느라 은근슬쩍 접어두어야 했던 어머니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보이기도 전에 어느새 백발 할머니가 되셨는데요.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졌다는 이유로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가족 안에서나 세상 속에서 점점 외로워지던 어르신들을 병원 현장에서 참 많이 보았습니다. 문득 과거 직장 생활을 하느라 제 아이를 홀로 집에 두어야 했던 외롭고 고단했던 시절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밀려드는 병원 업무와 숨 가쁜 스케줄에 치여, 늘 가슴 한구석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무거운 돌덩이처럼 달고 살았는데요. 내 일을 치열하게 해내면서도, 정작 내 아이에게는 씻지 못할 빚을 지고 있는 것만 같아 퇴근길 발걸음은 늘 무겁고 죄스러웠습니다. 비록 삶에 치여 매 순간 완벽하게 곁을 지켜주지는 못했을지라도,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가장 찬란했던 전성기마저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저 역시 그 세월을 정면으로 지나오며 배웠습니다.


대한민국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1조에 명시된 지침에 따르면, 국가와 사회 보건 당국은 노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홀로 수행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정당한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그 노후의 건강 안정과 가족의 간병 부담을 행정적으로 경감해 줄 법적 책무를 가집니다. 또한 인구전략기본법 제4조의 기준은 부양 의무자 개인에게만 가혹한 독박 간병의 중압감을 전가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적인 고령사회 대응 정책을 수립하고 공공 돌봄 인프라와 재정적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할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행정적 수치나 얄팍한 처세술 강의를 과장하기 위해 가족 간병 실무자들의 신체적 혹사와 복지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관행은 보건 안전망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의 정직한 노동 가치와 가정을 보호하는 안전망 수립이야말로, 우리 법과 국가 행정이 수호해야 할 가장 정당한 가치입니다.


요즘은 눈을 자극하는 짧은 숏폼 영상이나 요령껏 쉽게 쓴 글들이 순식간에 인기를 얻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 자극적인 결과물들을 보고 있자니, 밤새 모니터 앞에 앉아 지난 시절의 아픈 기억까지 꺼내어 꾹꾹 눌러 쓰던 제 글들이 참 미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결국 진실이 밝혀지듯, 글을 쓰는 일 역시 얄팍한 편법보다는 정직한 진심이 끝내 통할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화장실 앞에 앉아 고뇌하던 밤들을 지나, 제가 병원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마주했던 날것 그대로의 경험담과 그 속에서 깨달은 소중한 가치들을 담백하게 풀어놓고 싶습니다.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느라 지쳐가는 친정어머니를 향한 제 미안함과, 과거 병동 업무 때문에 아이를 홀로 두어야 했던 초년생 시절의 서러운 상처는 프로그램 복사 서식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제 가장 단단한 자존심의 증명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전성기를 기꺼이 내어주던 부모의 내리사랑을 기억하며, 저 역시 이 글방에 어떠한 꼼수 문구도 차단한 채 오직 진짜 제 삶의 진심만을 정직한 흔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