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거즈 한 장까지 철저하게 세어야 했던 치열한 기억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삶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저마다 마주한 상황과 한계 속에서도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발걸음을 마주할 때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잔잔한 기억들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던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면서, 과거 대학병원이라는 치열한 일터에서 나만의 중심을 잡기 위해 분투했던 젊은 날의 제 모습이 문득 겹쳐 보였습니다.
당시 정형외과 병동과 응급실을 정신없이 오가며 밤낮없이 밀려드는 환자들과 보호자분들의 예민한 감정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단 한 번의 판단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에, 정맥 주사와 근육 주사의 투약 경로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며 매 순간 긴장 속에서 근무했습니다. 밀려오는 피로 탓에 깊은 슬럼프가 찾아와 주위의 빡빡한 환경에 숨이 막힐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을 소리 없이 삼키며 하루를 버텨내곤 했습니다.
도망치듯 찾아간 수술실, 그곳의 날 선 공기
사람들과의 계속되는 대립과 감정 소모에 지쳐가던 무렵, 저는 차라리 환자들이 처치를 받으며 누워있는 수술실 근무를 자처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 간의 관계로부터 잠시 비껴서고 싶었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편안한 피난처일 거라 기대하며 들어선 수술실은 상상했던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곳은 오직 날카로운 집중력과 예민함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날 선 목소리가 수술방 전체를 채웠고,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은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특히 환자의 몸속에 수술 도구나 거즈가 단 하나라도 남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되기에, 붉게 물든 마른 거즈와 젖은 거즈 백여 개를 눈에 불을 켜고 한 장씩 세어야 했습니다. 차가운 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던 치열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현장의 법적 책임과 실무자의 권리
장시간 이어지는 수술 속에서 발바닥이 깨질 듯한 통증을 견디다 보면, 가끔은 가장 간단하게 끝나는 수술방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수술실 본연의 묵직한 가치는 소중히 여기면서도,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한 몇몇 거친 환경을 마주할 때면 일터에 대한 마음이 메말라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현장 속에서 우리 법률은 실무자들의 의무와 권리를 함께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법과 환자안전 관련 지침에 따르면, 수술실 실무를 수행하는 의료인은 환자의 체내에 이물질이 남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처치 전후로 사용된 기구와 거즈의 수량을 완벽히 일치하도록 전수 확인해야 할 엄격한 법적 책임과 주의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가장 정직한 안전선이 됩니다.
이와 동시에 일하는 이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장치도 존재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조항은 폭언이나 고성 등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환경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지키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표면적인 성과만을 강조하기 위해 현장의 안전을 소홀히 하거나 실무 인력의 혹사를 방치하는 관행은 공공 보건의 근간을 해치는 일입니다. 정석대로 수량을 대조해 안전망을 지켜내는 인력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올바른 본분입니다.
나만의 정직한 기록이 누군가에게 전하는 위로
사방이 막힌 현실 속에서도 끝내 제 자리를 책임지려 버텨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살벌했던 수술방 한구석에서 숨을 죽이던 제 젊은 날의 모습이 생각나 한동안 마음이 차분해지곤 합니다. 화면 앞에 앉아 지난날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적다 보니, 제 문장들이 소박하게 느껴져 혼자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알아주는 거창한 기준이나 남들의 시선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혹했던 수술방의 소음 속에서 마음이 지치고 외로웠던 날들의 기억, 타인의 날 선 기준이나 세상의 속도에 치여 정작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백여 개의 거즈를 세어야 했던 제 개인적인 고백이 가만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눈앞의 일시적인 성공보다 내 몸과 마음에 정직하게 새겨진 경험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 어쩌면 그 단단한 자부심이야말로 흔들리는 내 내면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낼 진짜 힘이 될 테니까요.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