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시절 굵은 펜으로 채워가던 수기 차트의 기억을 돌아보며
스마트폰이 세상을 온통 지배하기 전, 두꺼운 모니터와 파란 화면의 PC 통신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당시의 느린 전화선 통신망을 무대로 저마다의 사연을 피워내던 이들의 다정한 풍경, 그리고 오늘날의 익숙한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 그 이면에 숨겨진 치열했던 순간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밤마다 전화선이 연결될 때 나던 특유의 신호음을 숨죽여 들었던 그 시절의 다정한 순간들과 애틋한 사연들을 떠올려보면, 가슴 한구석이 잔잔해지면서 깊은 감정이 마음속으로 가만히 밀려오기도 하는데요.
수기 차트 방어선,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던 아날로그 병동
오직 깜빡이는 하얀 글자만으로 저마다의 삶과 고민을 나누던 그 시절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면, 문득 과거 병원에서 근무하며 컴퓨터 한 대 없이 모든 기록을 환자 종이 차트에 펜으로 직접 써야 했던 제 젊은 날의 기억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습니다. 쉴 새 없이 환자가 실려 오는 빡빡한 병원 안에서, 의사의 처방이나 간호 기록을 한 줄이라도 잘못 적거나 밀리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신중하게 곤두세워야만 했는데요.
다음 달 전화 요금 폭탄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던 아날로그 시절처럼, 제 손글씨 하나에 환자의 안전이 결정되던 그 시절의 병동 역시 매일 밤낮으로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볼펜을 노란 고무줄로 꽁꽁 묶어서 차트 위 하얀 백지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녀야 했던 치열한 공간이었습니다. 밤샘 근무를 서며 중심을 잡으려 애썼던 그 고단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자꾸만 그 묵직한 수첩과 차트 더미를 안고 달리던 제 옛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가만히 가라앉았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파란색 통신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개인의 기록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나가던 초기 미니홈피로 변해가는 과정은 참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흐름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그 낯설고 서툰 혼란을 돌아보면, 마음 한구석이 잔잔해지면서 묘한 서글픈 감정이 가만히 밀려오기도 했는데요.
텍스트 위주의 대화방에서 소통의 중심이 옮겨갈 때, 그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이리저리 부딪히던 옛 청춘들의 모습들. 거창한 시스템이나 기술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애쓰던 이들의 외로운 노력이 늘 숨어있기 마련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병원 EMR 전산화 과도기, 서투른 자판 위에서 견뎌낸 눈물
그 거대했던 아날로그의 변화 물결을 생각하면, 과거 저희 병원의 전산망이 종이 차트에서 컴퓨터 입력 방식으로 바뀔 때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병동의 과도기가 불쑥 눈앞을 스쳤습니다. 당시 병원 환경은 약물 처방전 한 줄, 환자의 맥박 신호 하나까지 두꺼운 펜을 쥐고 기록지 위에 일일이 제 손글씨로 적어가며, 단 한 줄의 오차도 내지 않으려고 매 순간 긴장 속에 밤을 지새워야 했는데요.
매끄럽게 돌아가는 마우스 클릭 하나 없이 오직 글자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여 환자를 돌보았던 그 낡은 종이 차트 더미들. 그것은 어쩌면 깜빡이는 모니터 앞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진심을 나누던 초기 통신망의 정겨운 공기와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불규칙한 3교대 근무와 숨 가쁜 밤샘 피로에 치여 새로운 컴퓨터 화면이 그저 차갑고 낯선 벽처럼 느껴졌던 풋내기 시절. 저 역시 달각거리는 익숙지 않은 자판 위에 서투른 손가락을 올리며, 그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외롭게 견뎌내야 했던 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거창한 성공 이야기 대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자신만의 소박한 이야기를 남기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추억은 언제 떠올려도 참 그립고 정겹습니다. 요령 부리지 않고 밤새 달각거리며 친구의 공간에 남기던 그 어색하고 서툰 한 줄의 흔적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 꾸밈없던 문장들이 가슴 한구석을 쓸쓸하게 스치며 깊은 감정이 가만히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춘 그럴싸한 기준에 흔들리기보다, 내 진짜 삶의 자취들을 묵묵히 쌓아 올리는 일. 어쩌면 그 소박한 기록들이야말로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내 흔들리는 내면을 가장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진짜 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료기록부의 정직한 작성 의무, 정보통신망 개인정보 보호의 사법적 가이드라인
그 아날로그 전산망의 추억을 보는데, 과거 어쩌다 사흘간의 귀한 휴가가 주어졌을 때나 겨우 한 번씩 컴퓨터를 켜서 사람들과 소통하려 애썼던 제 젊은 날의 기억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습니다. 당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도 낯설 만큼, 그저 화면에 이름이 적혀 있는 대로 사진을 올리고 한 달에 단 한 번 정도 접속하는 게 전부였던 바쁜 병동 시절이었는데요.
사실 얼마 전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소중한 기록의 흔적이 흐려지는 아쉬운 과정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진심 어린 속내를 나누던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단단한 뚝심을 마주하면 마음 한쪽이 잔잔해지곤 합니다. 이러한 정직한 기록의 태도는 우리의 법률적 의무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법 제22조(진료기록부 등) 규정에 따르면, 보건의료인은 환자의 명확한 신원 정보, 주사 투약 경로, 간호 기록 및 전산 처방 서식을 법적 규정에 의거하여 정직하게 작성하고 보존해야 할 엄격한 사법적 책무를 가집니다. 또한 종이 문서에서 전자의무기록(EMR)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도 정보 유출을 차단해야 할 철저한 주의 의무가 부과됩니다. 한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안전 지침은 디지털 플랫폼 운영 주체가 서비스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 및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방어하기 위한 기술적, 행정적 보안 조치를 집행하도록 규정합니다.
현장 실무 인력의 안전망과 수기 확인 책임을 소홀히 취급하는 관행은 공공 안녕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며, 정석대로 기록을 관리하는 노동 인력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제도가 수호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임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눈을 어지럽히는 영상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때로는 그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숨이 차고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린 모뎀 소리를 들으며 파란 화면 너머의 이웃들과 밤새 글을 나누던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다정한 고집이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는데요. 글을 쓰는 일도 결국 온전히 제 중심을 곧게 지켜내다 보면 언젠가는 진심이 통할 거라는 작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남들이 세워놓은 가식적인 기준이나 시선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인데요. 제가 치열했던 의료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정직한 기록들을 이 하얀 모니터 화면 위에 적어 나가려 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진짜 현실은 아날로그의 정취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냉정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팍팍한 흐름 속에서도 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건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밤새 잉크를 눌러 가며 환자의 안전을 위해 종이 차트를 채워나가던 이들의 책임감과 정성이었는데요. 수첩과 차트 더미를 품에 안고 밤샘 근무의 피로를 견디며 한 줄의 장부를 정직하게 지켜냈던 그 시절의 기억들.
세상의 빡빡한 규칙이나 타인의 날 선 기준에 치여 내 안의 중심을 밀어둔 채 남모를 상처를 삼키고 있을 누군가에게, 낯선 변화를 통과해야 했던 제 개인적인 고백이 가만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요행을 바라기보다 내 몸과 마음속에 정직하게 새겨진 경험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 어쩌면 그 단단한 자부심이야말로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내 일상을 가장 안전하게 지탱해 줄 진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