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실 실습 시절 아기들의 고사리 같은 손목에 채우던 식별 팔찌의 기억

과거 간호학 실습을 하던 시절, 대학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보냈던 제 젊은 날의 기억들이 불쑥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출산하는 가정이 워낙 많아서 새 생명을 낳으러 병원을 찾아오는 산모분들로 복도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는데요. 신생아실 안은 온종일 쉴 새 없이 자지러지게 터져 나오는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한 팽팽한 공간이었습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갓 태어난 아기들의 발가락을 세고 안아주느라 발바닥이 한 발짝 떼기 힘들 만큼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지만, 동시에 이 여린 생명들을 온전히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온 신경이 뾰족하게 곤두서곤 했습니다. 제 사소한 부주의가 자칫하면 이 가녀린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가 될까 봐, 숨을 죽인 채 아기 발찌와 인계 장부를 거듭 대조하던 치열한 순간들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당시 신생아실 안은 인큐베이터 안 공간에까지 임시로 자리를 만들어 갓 태어난 아기들을 뉘어두어야 했을 정도로 요람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연약한 생명들로 가득 찬 방 안에서, 혹시라도 아기들의 신원이 자칫 뒤바뀌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기에 매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중압감이 엄습하곤 했는데요. 면회 시간이 시작되면 산모의 이름과 아기 발찌를 몇 번이고 대조해가며 유리창 너머로 가족들에게 보여주어야 했기에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작은 아기들의 손목과 발목에 아주 조심스럽게 팔찌와 발찌를 채우며 거듭 확인을 거쳤는데, 여자 아기에게는 분홍색 끈을, 남자 아기에게는 하늘색 끈을 알맞게 채워두던 그 조심스러운 과정은 그야말로 온 정성을 다해야 하는 신성한 약속과도 같았습니다. 깊은 밤과 낮을 오가는 지독한 고단함 속에서도, 가만히 검지 손가락을 내밀면 본능적으로 꼬물거리며 제 손가락을 꼭 쥐어주던 아기의 작은 온기는 힘든 실습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영유아 신원식별의 법적 주의 의무와 간호 실무의 무게

이처럼 신생아실에서 아기들의 손목과 발목에 식별 끈을 채우고 장부를 확인하는 행위는 단순한 일과를 넘어 중대한 책임이 따르는 작업입니다. 대한민국 의료법과 환자안전법의 실무 지침,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환자 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료기관 내의 보건의료인은 의약품 투약이나 신생아 면회 등의 실무를 집행할 때 영유아의 신원 식별 팔찌·발찌 데이터와 전산 장부를 철저히 교차 대조하여 인적 오류를 완벽히 방어해야 할 엄격한 법적 책임과 주의 의무를 지닙니다. 또한 모자보건법 제3조에 의거하여 영유아가 신체적 결함이나 보건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현장 인력들의 정직한 노동과 책임에서 시작됩니다.

눈앞의 편리함이나 요령을 앞세워 전선 인력의 확인 책임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환자 안전망을 저해하는 결함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석대로 원칙을 사수하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정직한 노력이 야말로 제도가 책임져야 할 가장 안전한 보루인 셈입니다. 작은 판단 착오가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압감 속에서도, 오직 제 자리를 버텨내겠다는 마음 하나로 끈질기게 매달리던 그 시절의 올올한 고집이야말로 현실의 부실함을 바로잡는 진짜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빈 젖병을 씻으며 삼켰던 워킹맘의 가슴눈물과 소중한 기억

과거 실습생 시절을 지나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저 역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직접 차가운 분만대 위에 누워보고서야 비로소 산모들의 진짜 눈물겨운 진통이 어떤 건지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면서, 아기가 제 옆에서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잠든 모습을 밤새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는데요. 무슨 예쁜 꿈을 꾸는지 가녀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냥 눈에 밟히다가도, 이내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으며 복잡한 자괴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모유를 아기한테 반년 정도는 넉넉히 물려야 아이의 몸이 단단해진다고 들었지만, 저는 겨우 보름이 지나자 모유가 끊겨버려 그 귀한 초유조차 얼마 먹이지 못한 채 결국 분유를 타서 물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요즘은 분유도 원체 잘 나온다며 제 어깨를 따스하게 다독여 주셨지만, 그래도 내 아이에게 따뜻한 젖 한 번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매일 아침 빈 젖병을 씻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곤 했습니다. 핏덩이 같던 내 아이를 품에 안고 젖줄이 돌지 않아 홀로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그 시절의 서글픈 고백들은 여전히 가슴 한쪽에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치열했던 의료 현장과 산후조리 시절 아이에게 분유를 물리며 삼켜야 했던 그날의 단단했던 기억들을 이 하얀 화면 위에 담백하게 적어 내려갑니다. 장부를 대조하며 아기들의 손목에 알맞은 색깔의 끈을 채워 넣던 그 조심스러웠던 병동에서의 기억만큼은, 지금 돌아보아도 제 평생의 가장 정직하고 뜨거웠던 자부심이었습니다. 세상의 빡빡한 계산이나 타인의 날 선 기준에 치여 내 안의 진짜 소중한 중심을 잃어버린 채 상처받고 있을 누군가에게, 홀로 발을 동동 구르며 견뎌내야 했던 제 개인적인 슬픔이 가만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