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배관 매설 상황 확인의 의무와 응급실 현장에서 마주한 생명의 무게
과거 대학병원 응급실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주했던 무서운 위기들이 어김없이 떠오르곤 합니다. 안전이라는 당연한 가치가 붕괴하는 순간 인간이 겪는 충격과 고통을 몸소 목격하고 겪어보았기에,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재난들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데요. 특히 예고 없이 일상 공간이 무너져 내렸던 기억은, 과거 대구 상인네거리 인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던 대형 가스 누출 사고의 기억을 불쑥 불러내기도 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현실의 엄혹함이 자꾸만 마음에 겹쳐와, 한동안 무거운 심경을 가라앉히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당시 대구 지하철 공사장 쪽으로 누출된 가스가 터졌을 때, 도로를 덮고 있던 수천 장의 거대한 복공판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지나던 등굣길 학생들과 차량들이 어둠 속으로 고스란히 추락하는 안타까운 비극이 벌어졌었는데요.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매정한 사회적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깊은 안타까움이 들곤 합니다.
그 아픈 기억 너머로, 과거 응급실 시절 공사 현장의 높은 건물 외벽에서 칠 작업을 하던 중 줄이 툭 끊어지는 바람에 실려 오셨던 한 노동자분의 간절했던 눈빛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단 한 번의 안전불감증이나 방심이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 및 일상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현실의 매정함이 자꾸만 생각났는데요. 벼랑 끝에 선 듯한 사투 위로 쓸쓸한 현실의 이면이 겹쳐 보여, 한동안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먹먹함을 가라앉히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대구 상인동의 참혹한 사안을 계기로, 땅을 파기 전 반드시 지하 연료 관로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한 굴착공사정보지원체계가 도입되고 안전 기준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뒤늦게나마 큰 희생을 치른 후에야 겨우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아주 간신히 한 걸음 나아갔던 것인데요.
안전지대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집과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며, 평온함 뒤에 숨겨진 현실의 차디찬 부실함이 어디쯤 와 있는지 조용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야속한 현실을 보고 있으니, 과거 응급실 현장에서 온 힘을 다해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며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CPR)에 매달렸던 그 새벽이 불쑥 눈앞에 선명해졌습니다.
끝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의료진이 사망 확인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던 그 허망한 순간, 자식을 위해 높은 외벽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일해야 했던 가장의 고단했던 삶의 무게가 투박하게 전해져 마음이 턱 밑까지 짓눌리곤 했는데요. 병원의 손익 계산서나 거창한 숫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무력감과 슬픔에 지쳐, 퇴근길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한민국 도시가스사업법 제30조의3(도시가스배관 매설상황 확인) 규정에 따르면, 지하에 매설된 가스 배관 파손과 대형 참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도시가스 공급 지역에서 굴착공사를 하려는 주체는 반드시 계획을 신고하고 배관 매설 상황을 철저히 확인받아야 할 법적 책무를 가집니다. 또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관련 행정 법령은 무분별한 도심 지반 침하를 예방하고 노후 주거지의 안전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정기적인 지하안전평가와 정밀 검증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발의 이익이나 기계적 지표를 과장하기 위해 서민들의 가식 없는 주거 안전망을 위협하는 행태는 우리 제도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사안입니다. 현장 실무자의 가느다란 생명선을 철저히 수호하는 체계 수립이야말로 법과 사회 제도가 책임져야 할 본연의 임무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고 나서야 겨우 한 걸음 나아가는 세상의 냉혹함 앞에, 당장 다음 날 새벽의 밀려드는 업무 걱정 때문에 서글픈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고 다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현실은 참 서글프고 외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매정한 숫자의 계산법에만 매몰된 현실의 차가운 시스템은, 정작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의 안전망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니까요.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나 화려한 기준에 연연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땅 밑의 위험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정직한 태도야말로 우리 이웃들의 소박한 일상을 안전하게 받쳐주는 가장 단단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온함 뒤에 숨겨진 현실의 부실함 속에서 내 곁의 사람을 끝내 지켜내는 진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가만히 되돌아보게 됩니다. 과거 병원 현장에서 환자의 상태와 작은 숨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켠 채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지난날들이 불쑥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단 한 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위에서,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믿지 않겠다며 스스로를 매섭게 단련했던 치열한 날들이었는데요.
그 고단했던 시간은 고스란히 제 자부심이 되었기에, 제가 병원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정직한 기억들을 이곳에 하나씩 온전히 꺼내어 놓고 싶을 뿐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신입 시절의 눈물을 묵묵히 이겨내고 당당하게 제 자리를 지켜냈던 그 시절, 손끝에 남아 있는 생생한 감각을 기억합니다.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 치열함 속에서, 제 일상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