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해진 휴지 조각의 눈물을 넘어 손끝의 직관을 사수하기까지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오랜 경력이 가진 연륜과 젊은 감각의 혁신은 대개 서로 부딪히는 단어로 여겨지곤 합니다.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그저 환자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정신없는 병원 현장에 막 첫발을 내디뎠던 그때, 저는 제 마음과 달리 환자의 주사 부위를 한 번에 찾지 못해 쩔쩔매다 실수를 연발하곤 했습니다.
예민해진 환자들의 모진 질책과 날 선 반응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때면 신입이라는 자괴감과 서러움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는데요. 차마 남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차가운 화장실 변기 칸으로 도망쳐 문을 잠그고 엉엉 소리 내어 울어야 했던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빗장을 걸어 잠근 그 좁고 적막한 공간 속에서 축축해진 휴지 조각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밤샘 근무를 버텨내곤 했었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5년 차 실무자로 성장했을 때, 제게 든든한 무기가 되어준 것은 최첨단 장비의 데이터보다 몸이 기억하는 노련한 직관의 힘이었습니다. 아무리 머리 회전이 빠르고 똑놓은 신입이라 한들, 긴박한 의료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터지면 얼어붙기 마련인데요.
눈으로는 혈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응급 환자가 들어와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던 급박한 순간, 최첨단 의료 장비조차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해 의사들마저 고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체득한 손끝의 미세한 감각, 오직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촉 하나만을 믿고 주삿바늘을 밀어 넣어야 했었죠.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단 한 번에 주사 라인을 잡아 환자의 숨통을 틔워주었을 때, 그리고 처치를 무사히 마친 후 환자분에게 나지막이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을 때 몰려오던 묵직한 안도감은 지금 생각해도 손끝이 짜릿해집니다. 그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차가운 기계나 컴퓨터 전산 시스템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현장 사람들의 정직한 땀방울이 만들어낸 진짜 연륜의 힘이었습니다.
문득 제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IMF 시절의 기억이 불쑥 겹쳐 보입니다. 당시 병원에 갓 입사해 모든 게 서툴고 낯설기만 했던 제게는, 평생을 의료 현장에 헌신하며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주던 든든한 베테랑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거대한 기둥 같았던 분들이었죠. 하지만 돈과 효율성, 조직의 감축이라는 차가운 숫자의 잣대 앞에 그 오랜 연륜은 너무나 허망하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바친 정든 병원을 떠나야 했던 선배들의 그 쓸쓸한 뒷모습을, 저는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세상의 냉혹함 앞에 힘없이 밀려나던 선배들의 눈빛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내던 단단한 모습 위로 묘하게 겹쳐와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좋은 일터, 그리고 일의 진짜 가치라는 건 단순히 첨단 시스템의 효율성이나 매출 숫자로만 증명되는 게 아닐지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나누는 투박한 온기, 그 눈빛과 마음이 스며들 때 비로소 우리가 일하는 공간도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 오랜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의 연륜을 단지 돈이나 효율성이라는 매정한 숫자로만 평가해 선배들을 등 떠밀듯 내보냈을 때, 남겨진 병원 현장이 얼마나 차디차게 식어가는지 저는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대한민국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의4 및 제19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보장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퇴직이나 해고 등 고용 상의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 되며 숙련된 시니어 인력의 고용 안정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또한 의료법과 환자안전법에 명시된 지침에 따르면, 보건의료인은 주사나 투약 같은 침습적 실무를 수행할 때 단순한 기계적 수치보다 임상 경험에 기반한 엄격한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조직의 단기적인 매출 지표나 효율성의 셈법을 부풀리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연륜을 쌓아 올린 베테랑 인력의 가치를 소모품처럼 치부하는 직장 문화의 관행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합니다. 현장 실무자들의 정직한 노동권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안전망이야말로, 우리 사회 제도가 수호해야 할 가장 소중한 본질입니다.
신입 시절 환자들의 모진 질책 앞에 화장실 변기 칸으로 숨어 눈물을 삼켜야 했던 혹독한 상처가 있었기에, 의사들마저 고심하던 응급 환자의 혈관을 손끝의 촉 하나로 사수해 내는 베테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글방에 어떠한 꼼수 서식도 배제한 채 정직한 제 삶의 진심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지금까지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