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흡의 크기만큼만 나아가라 다독이던 제주의 숨소리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만 겨우 인정받는 치열한 도시 한복판. 우리는 제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위험 신호를 억지로 외면하곤 합니다. '여기서 뒤처지면 끝'이라는 불안감에 브레이크 없이 달리다 보면, 결국 마음이 툭 하고 부서져 내리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평화롭고 정겨운 제주의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문득 제 지난날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습니다. 대학병원이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온 힘을 다해 버티다, 결국 번아웃이 와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 그때의 기억 말이죠.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병원 안에서, 밀려드는 투약 업무와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처리하느라 매 순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급하게 돌아가는 엄격한 시스템 속에서, 환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습니다.
숨 막히던 일과에 치여 정작 제 마음 하나 돌볼 여유조차 없다 보니, 정말 온몸의 에너지가 하얗게 재가 되어버리는 기분이었죠. 그렇게 매일매일 한계까지 달리다 결국 주저앉아 버렸던 그때, 저 역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내 모난 모습까지 조건 없이 받아줄 고향 집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소리 없이 삼켰습니다.
"오늘 하루도 탐욕 부리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가 오라." 잔잔하게 울려 퍼진 이 말 한마디가 제 마음을 쿵 하고 때렸는데요. 거친 바다에서 다른 사람의 숨을 탐내거나 내 한계를 넘어서는 욕심을 부리는 순간,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게 그들의 철칙입니다. "딱 너의 숨만큼만 버티라"는 그 말이 유독 가슴 저리게 다가왔던 건,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일터에서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작 제 숨은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나를 한계까지 쥐어짜내며 겨우 버텨내던 시절, 매 순간 짓눌러오는 중압감에 숨이 턱 끝까지 막혀올 때면, 삭막한 병원 건물을 탈출해 탁 트인 바다 앞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속마음을 온전히 털어놓을 쉼터 하나 없이 당장 몇 시간 뒤의 새벽 출근이 무서워 서둘러 침대에 누워야 했던 밤들. 내일의 에너지를 위해 억지로 눈을 감아야 했던 그 시절의 밤은, 참 서글프도록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사실 병원에서도 아무리 좋은 처치를 받고 치료를 받는다고 한들, 막상 돌아갈 내 현실과 일상이 여전히 외롭고 팍팍하다면 마음의 병은 결국 다시 고개를 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믿어주는 든든한 내 편이 곁에 있다는 것, 그 긴밀한 연대와 사랑이야말로 넘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완벽한 처방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도, 결국 이런 외로움과 마음의 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 기준에 맞춰 자신을 억지로 채찍질하는 일을 멈추는 것, 그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다며 투박하게 어깨를 내어주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문득 제 지친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대한민국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제4조와 국가 중요어업유산 지침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나잠어업을 수행하는 해녀를 비롯한 수산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들의 안전과 소득 안정을 보장하는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법적 책무가 있습니다.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제4조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국가와 보건 행정 시스템은 근로자가 거대한 조직의 서식이나 숫자의 논리에 매몰되어 심각한 번아웃과 고립감을 겪지 않도록 사업장 등과 연계된 심리적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부실한 지표나 얄팍한 처세술 강의를 위해 현장의 안전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잘못된 관행을 차단하고, 정직한 내면의 가치를 사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제도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려다 날개가 꺾인 진짜 내 이름을 복원해 내는 일.
산더미 같은 전산 장부와 약제 카트 뒤에서 내 숨을 갉아먹으면서도 환자들의 투약 안전망을 지켜냈던 날들 뒤로, 다음 날 새벽 출근의 중압감에 에너지를 끌어 쓰려 눈을 감아야 했던 고독했던 병동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오직 내 호흡의 크기만큼만 나아가라 다독이던 그 지혜처럼, 저 역시 이 공간에 어떠한 꼼수 서식도 배제한 채 정직한 제 삶의 진심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