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귀갓길 골목길의 기억, 시스템의 셈법 속에 소외된 약자의 눈물
살다 보면 포장된 세상의 화려한 단면 뒤에 숨겨진 차가운 그늘을 마주하며,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게는 인생의 한 시절을 대학병원 정형외과 병동에서 보냈던 기억이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전공의 선생님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3차 고깃집까지 이어지는 강압적인 밤샘 회식 문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겨우 자리를 빠져나왔던 어느 날, 캄캄한 집 앞 대문 앞에서 열쇠를 찾고 있던 제 뒤편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위험한 물건을 든 채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그 외진 골목길에서 서늘한 공기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는 지금도 손이 떨릴 만큼 생생합니다. 숨이 턱 막히는 비현실적인 두려움 속에서도 악착같이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 소리를 지르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날 새벽 골목길에서 공포에 질려 숨죽여야 했던 기억은 가슴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서러운 흉터로 남았습니다.
진짜 비극은 그 끔찍한 사건이 터진 이후, 피해자를 대하는 사회 시스템의 서투르고 무신경한 시선과 마주했을 때 다시 한번 시작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밤샘 조사를 마친 다음 날, 오직 절차를 채우기 위한 성과 중심의 차가운 시스템은 피해를 입은 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하필 가장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고 있던 병실 스테이션으로 조사관들이 불쑥 찾아왔던 것입니다.
동료들과 직장에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가슴을 졸여야 했고, 일터에까지 찾아와 처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그들의 무신경함에 비참함이 밀려왔습니다. 게다가 다른 지역의 한 담당자는 전화기 너머로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기계적으로 캐물으며, 제 심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질문들을 툭툭 던졌습니다.
사건의 충격을 깊이 들여다보고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서류상의 실적과 서식에 매몰되어 당사자를 다그치듯 쏘아붙이는 태도를 견뎌내야 했던 현실은 억울하고 지독한 분통이 치밀게 만들었습니다. 정작 명확한 해결을 보지도 못할 거면서 일상과 업무에 지장을 주던 그 매정한 책임 전가의 현장 속에서,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눈에 보이는 숫자에 치여 정작 손길이 시급한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외면해 버리는 세상의 냉혹함을 뼈아프게 절감했습니다.
대한민국 법률로 시행 중인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1조에 따르면, 국가 제도는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의 기본 정책을 정하고 생명이나 신체에 피해를 받은 사람을 구조함으로써 피해자의 복지 증진과 인간의 존엄성 수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 등 노동 및 치안 관계 사법 지침에서도 수사나 재판을 담당하는 관계 공무원은 피해자의 주소, 성명, 직업 등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공개하거나 누설하여 2차 피해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 사실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요. 그러나 현실의 차가운 시스템 벽 앞에서 무력하게 방치된 약자들의 눈물은 여전히 깊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온라인상에 글을 적다 보면 간혹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럴듯하게 가공되거나 포장된 이야기들이 먼저 시선을 가로채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제 지난 아픈 기억을 꾹꾹 눌러 담아 쓰던 기록들이 참 소박하고 보잘것없어 보여 혼자 조용히 낙담하곤 했는데요.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가식적인 기준이나 눈앞의 수치에 흔들리기보다,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제가 의료 현장과 외진 길 위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정직한 기록들을 이 공간에 차분하게 채워가려 합니다.
세상의 빡빡한 기준이나 타인의 차가운 시선에 치여 남모를 상처를 삼키고 있을 누군가에게,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제 이야기가 작은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무섭고 외로웠던 기억 속에서도 제 글을 읽으며 중심을 다잡고 묵묵히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이 계시기에 비로소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입니다. 지금까지 황글라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