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병동의 지워진 발자국, 치매 어르신의 외로운 사투와 병원 지하실의 기억
인생의 한 시절을 대학병원 정형외과 병동에서 보내며 마주했던 수많은 생사의 자취들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화두로 남아있곤 합니다. 신입 티를 조금 벗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였을 무렵, 당뇨와 치매를 함께 앓으셨던 한 어르신과의 만남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어르신은 당뇨가 워낙 심하셨던 탓에 매년 오른쪽 발을 조금씩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발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참 무거웠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전공의 선생님과 드레싱 라운딩을 돌며 어르신의 붕대를 풀어보았을 때, 이미 발가락부터 발바닥까지 시꺼멓게 괴사가 진행되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신경이 죽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잘 걸어 다니셨지요. 정작 어르신을 진짜 힘들게 했던 건 썩어가는 발이 아니라, 기억을 서서히 갉아먹는 지독한 치매였습니다.
어르신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 주워 담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볼펜이며 화장지며 손에 잡히는 대로 전부 수집해서는, 환자복 배 속에 가득 채워 볼록하게 넣고 다니셨는데요. 같이 입원해 계신 다른 환자분들은 치매라는 병을 잘 모르다 보니 병실에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 물건이 없어졌다면서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어르신을 도둑으로 몰고 흉흉한 소문을 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실 병원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치매 증상을 다 마주하게 됩니다.
욕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분도 있고, 밥에 약을 탔다며 상을 엎어버리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어르신의 엉뚱한 행동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얄미운 도둑질로만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참 얌전한 분이셨는데, 병실 환자들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귀신같이 가셔서 물건들을 옷 속에 숨겨오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르신이 모아온 물건들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느라 참 애를 먹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병동 간호사들은 어르신이 깊게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몰래 환자복 안을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정신없는 소동을 치르며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결국 어르신의 발 절단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신 어르신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참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독한 마취 기운이 아직 안 풀렸는지 내내 눈도 못 뜨고 계시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 전공의 선생님과 드레싱 라운딩을 갔을 때도 어르신은 여전히 눈을 못 뜨고 계셨습니다.
그 큰 수술을 받았으니 분명 아플 법도 한데, 아프다는 표현조차 이젠 잊어버리신 건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누워만 계셨습니다. 눈을 감고 계신 야윈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마음이 참 묵직해졌습니다. 이 힘든 수술이 어르신에게는 얼마나 무섭고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까, 차라리 그냥 깊은 잠 속으로 피해 계신 건 아닐까 싶어 서글픈 생각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엿새째 되던 날, 새벽녘에 어르신이 병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지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병동 복도나 내부에 CCTV 같은 안전 관리 시설이 전혀 없던 척박한 때라, 어르신이 도대체 어느 틈에 어디로 가신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보호자분이 정신없이 경찰에 신고하고 온 동네를 샅샅이 찾아 헤맸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라지신 지 닷새 만에 결국 청천벽력 같은 연락이 왔습니다.
어느 지하철역 지하실에서 어르신이 발견되었는데, 이미 차갑게 숨을 거두신 상태였다고 합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보호자분에게 빨리 와달라는 실종 비보였습니다. 보호자분은 연락을 받자마자 지체 없이 향하셨고 안타깝게도 사태는 비정한 사실이었습니다. 어르신을 병원 안치실로 모신 뒤, 병동에 오셔서 서글픈 퇴원 수속을 밟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가시는데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습니다.
대한민국 '노인복지법 제31조의2(실종노인의 신고의무 등)' 규정에 따르면, 국가와 보건당국은 치매 등으로 인한 실종노인의 조속한 발견과 예방을 위해 관련 시설의 수색과 조사를 명할 제도적 책무를 가집니다. 또한, 환자의 안전사고 예방과 보건 위생 향상을 위해 '의료법 제36조(준수사항)' 지침에 의거하여 의료기관의 장은 시설 설치 기준 및 감염 방지, 의료인력 정원 기준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 영역에 속합니다.
조직의 행정적 지표나 안일한 계산법 뒤에 숨어 환자 돌봄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관행은 공공 보건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병원 내부의 취약한 환경을 사전에 차단하고 실무자들의 정직한 노동 권익과 환자의 안식을 철저히 방어하는 안전망 수립이야말로 우리 법과 제도가 수호해야 할 본연의 임무입니다.
정작 현실의 사각지대 속에서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던 약자들의 마지막 발걸음은 참으로 쓸쓸하게 지워지곤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엉뚱한 행동만 보고 손가락질하기보다, 그 뒤편에서 온몸으로 질병을 버텨내고 있던 타인의 고단한 속사정을 먼저 헤아려주는 따뜻한 시스템의 시선이 얼마나 간절한지 가만히 복기해 봅니다.
인생의 가장 치열했던 임상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던 자취들은 시간이 흘러도 제 삶의 단단한 이정표가 되어주곤 합니다. 밤을 새워 환자의 곁을 지키며 깨달았던 인간 존엄의 무게를 이 정직한 화면 위에 담백하게 채워가려 합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떳떳하게 땀 흘리고 계신 모든 실무자분의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병실 안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던 그 시절 어르신의 모습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제 간호사 기억 한구석에 여전히 먹먹한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제 서툰 이야기들을 눈으로, 또 마음으로 온전히 따라와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황글라라였습니다.